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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타지 이야기/중국

치우(蚩尤) - 무기, 전쟁의 신

by 별빛아재 2020. 7.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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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 치우(蚩尤). 치우천왕, 치우천황이라고도 한다.

 

신분

 : 옛 구려족의 지도자. 묘족의 조상신. 염제의 후예. 무기, 전쟁의 신.

 

모습

 : 여섯 개의 팔과 네 개의 눈, 소의 뿔과 발굽이 있고 머리는 구리와 쇠로 되어 있다. 치우는 팔 6개에 눈 4개가 달리고, 소의 뿔과 발굽, 구리로 된 머리와 쇠로 된 이마(동두철액)가 있었으며, 맨몸으로 맹수와도 대적할 수 있을 만큼 힘도 굉장히 강했다고 한다.

 

가족

 : 그의 형제는 모두 81인이나 되는 데 모두 하나같이 키가 여러 장(丈)이 되고, 불사신처럼 용맹스러웠다. 또 그들의 머리에는 두 개의 견고한 뿔이 나 있으며, 귀 밑 털은 마차 칼 날처럼 빳빳이 서 있고 눈이 네 개나 되며, 손이 여섯 개나 되고, 발은 마치 소의 발처럼 생겼다. 치우의 형제들은 생김새가 괴이할 뿐만 아니라 모래와 쇳덩이, 바위 등을 먹었다.

 

전설 :

1. 배경

원래 치우는 염제 신농씨(炎帝 神農氏)의 세력이었다. 염제의 힘이 쇠하여 제후들이 서로 다툴 뿐만 아니라 백성들을 사납게 짓밟았으나 신농씨는 이를 휘어 잡지 못하였다.

 

이때 황제 헌원(黃帝 軒轅)이 무력으로 제후를 치니 모두 와서 복종하였다. 헌원은 이에 덕으로 다스려 병사들의 전력을 떨쳤으며 오기(五氣: 다섯 천기, 雨,陽, 暑, 寒, 風)를 다스리고, 오곡(五穀: 다섯 가지 곡식, 쌀, 수수, 보리, 조, 콩)을 심게하여 백성을 어루만졌다.

 

2. 황제가 판천의 들에서 염제를 이기다.

세력을 키운 황제는 판천(阪泉)의 들에서 염제와 세 번을 싸워 승리하였다. 황제는 호랑이, 표범, 큰곰과 같은 맹수를 훈련시킨 부대를 주력으로 하는 운사(雲師)라는 군대를 이끌고 판천의 들판에서 염제와 싸웠는데, 세 차례 전투 후 마침내 상대를 격파하고 천하를 손에 쥐게 되었다. 하지만 황제는 염제의 자손을 멸하지 않고 남방의 제왕으로 삼았다.

 

이 전쟁에서 승리한 것을 축하하기 위해 황제는 천하의 모든 신들을 태산(泰山: 산동에 있음)에 불러 모았다. 그 때 황제는 코끼리가 끄는 수례(寶車) 위에 앉고, 외 다리 필방조(畢方鳥)가 황제의 시중을 들고, 여섯 마리 교룡(蛟龍)이 수레 양측을 호위하고, 봉황(鳳凰)이 춤을 추고, 날개 달린 등사(騰蛇)가 땅에 엎드리고, 천신 풍백(風伯)과 우사(雨師)가 황제가 탄 수레가 지나갈 길을 청소하듯 가랑비를 뿌리고, 각양각색의 신들이 황제가 탄 수레 뒤에 행렬을 이루며 따르고 있어 일대 장관을 이루었다. 더욱 볼만한 것은 이번 전쟁에서 포로가 된 치우를 대오의 맨 앞에 내세워 길을 뚫게 한 것이었다.

 

3. 치우, 탈출하다.

황제는 태산 서쪽에 천하의 모든 신들을 모아 놓고 그들이 보는 앞에서 포로가 된 치우로 하여금 길을 내게 하였다. 황제는 자신의 위엄을 보이기 위해 그렇게 했지만 자존심이 강한 치우는 마음 속 깊이 수치스러움과 심한 모욕감을 느껴 몹시 화가 치밀어 올랐다.

 

그러면서도 황제는 혹시 치우가 자기를 배반하지 않을까 염려하여 풍백과 우사에게 치우의 행동을 감시하라 시켰기 때문에 그들은 치우를 따라 다니며 이야기를 나누는 동안 셋은 진정 마음을 터 놓는 친구 사이가 되었다. 풍백과 우사의 도움으로 치우는 탈출구를 찾아 내서 쏜 살같이 남방으로 도망쳤다.

 

4. 거병하다.

치우가 남방으로 도망쳐 염제를 만나 황제의 힘이 별 것 아니므로 다시 군사를 일으켜 황제를 쳐서 복수를 하자고 부추겼으나 염제는 노쇠하고 전쟁에 환멸을 느껴 그냥 남방의 천제로 남아 있기를 바랬다.

 

치우는 염제의 나약하고 무능한 모습을 보고 자신이 직접 거사할 것을 결심하고 81명으로 형제들을 동원하였다. 치우는 남방 묘민(苗民)을 동원 하였다. 묘민은 본시 황제의 족속이었으나 황제가 자기들을 업신여기고 차별대우 하는데 불만을 품고 있었기 때문에 황제를 무너뜨리려는 치우의 계획을 찬동하였다.

 

이 외에 남방의 산림과 소택지에 사는 괴물과 잡귀, 황제의 가혹한 통치에 반감을 품고 있던 인간세계에 횡행하는 온갖 귀신을 다스리는 신도(神茶)와 울루(鬱壘)도 치우가 황제를 치는 대열에 가담하였다.

 

치우는 염제의 명호를 빌어 ‘염제(炎帝)’라 칭하고 대군을 거느리고 남방을 출발하여 북쪽으로 진군하였다.

 

5. 무기를 만들어 유리한 전황을 이끌다.

황제는 곤륜산 궁원(宮園)에서 치우가 쳐들어 온다는 소식을 듣고 몹시 놀랐다. 황제는 처음 도덕과 인의로서 치우를 감화시키려 하였으나 치우가 워낙 완강하여 감화시킬 수 없다는 것을 알고 마침내 무력으로 맞서 일대 격전을 벌이게 되었다.

 

염제의 후예인 치우는 본디 남방 거인 부족의 수령으로 그의 형제는 모두 81인이나 되는 데 모두 하나같이 키가 여러 장(丈)이 되고, 불사신처럼 용맹스러웠다. 또 그들의 머리에는 두 개의 견고한 뿔이 나 있으며, 귀 밑 털은 마차 칼 날처럼 빳빳이 서 있고 눈이 네 개나 되며, 손이 여섯 개나 되고, 발은 마치 소의 발처럼 생겼다. 치우의 형제들은 생김새가 괴이할 뿐만 아니라 모래와 쇳덩이, 바위 등을 먹었다.

 

또 그들은 무기를 제조하는 능력이 탁월하여 예리한 창(矛), 날카로운 미늘창(戟), 거대한 도끼(斧), 견고한 방패(盾), 날렵한 활과 화살 등을 만들었다. 이 외에도 그들은 초인적인 신통력을 지니고 있었다.

 

치우는 궐기에 즈음하여 자신과 동일한 모습을 하고 있는 형제들을 핵심으로, 이매망량(魑魅魍魎)으로 총칭되는 요괴들을 불러 군대를 결성했다. 또 치우의 군대에는 바람의 신 풍백(風伯)과 비의 신 우사(雨師)가 은밀히 합류하여 치우군의 비장의 무기가 되었다.


치우는 이들을 데리고 갈로산(葛盧山: 지금의 葛石山 부근)에 들어가 광석을 캐어 청동으로 칼, 투구, 창, 그리고 화살촉을 만들었다.

 

< 치우 vs 황제. 출처 : 구글 검색 >

6. 연전연승하다.

치우의 군대는 청동제 무기로 무장하고 일제히 탁록부터 공격하여 승리하니 그 기세가 질풍과 같았다고 한다. 이 전쟁에서  한 해 동안에 아홉 제후의 땅을 평정하였다.

 

치우의 군대는 다시 옹호산(雍狐山)에 들어가 수금(水金)과 석금(石金)을 캐어 아홉 개의 야금소를 설치하고 거기에서 예과(芮戈:예리한 병기)와 옹호극(雍狐戟:창)을 만들어 무장을 강화하고 군대를 새롭게 정비하였다.

 

당시 치우의 군대는 발전된 병기제작 기술과 치우의 영도력에 의거 수많은 세력을 패퇴시키고 그 판도를 넓혀갔다.

 

치우 군대는 헌원을 향하여 사방에서 조여 들어 갔으나 굴복하지 않자 크게 안개를 일으켜 지척을 분간할 수 없게 하고 싸움을 독려하였다. 이에 적군은 두려움에 떨며 목숨을 걸고 도망치니 백리 사이에 병마를 볼 수 없었다.이렇게 하여 기주(冀州), 연주(兗州), 회대(淮岱)의 땅이 모두 평정되어 탁록에는 성을 쌓고, 회대에는 집을 짓자 헌원의 족속들이 모두 신하라 하며 공물을 바쳤다.

 

치우가 군대의 진용을 정비하여 사면으로 진격한 지 10년 동안 헌원과 싸운 것이 73회나 되었다. 그런데도 장수들은 피로한 기색이 없고 군사들은 뒤로 물러설 줄을 몰랐다.

 

황제는 연전 연패하여 전황은 황제가 매우 불리하게 전개되었다. 한번은 원야에서 전투가 벌어졌는데 치우가 갑자기 마법을 부렸다. 콧구멍으로 안개를 온 천지에 내 뿜어 황제의 군대를 포위하였다.

 

황제의 군대는 사방을 분간할 수 없는 짙은 안개 속에서 구리머리 쇠 이마에다 뿔이 돋은 치우들은 매서운 공격을 퍼부었다. 그들은 짙은 안개 속에서도 신출귀몰하듯 나타났다 사라지면서 닥치는 대로 황제의 군사들을 찍어 죽여서 황제의 군대는 차마 눈뜨고 볼 수 없는 처참한 모습으로 쓰러져 갔다.

 

황제는 전거위에서 보검을 빼어 들고 “포위를 뚫고 앞으로!”를 외쳤지만 황제군대는 짙은 안개 속의 포위망을 벗어날 수가 없었다. 안개는 온 천지를 뒤덮은 흰 장막과도 같았다. 황제의 군대는 이 장막 안에 갇혀버린 것이다.

이 어려운 때에 황제 진영에 풍후(風后)라는 신하가 북두칠성의 자루가 계절에 관계없이 한 방향을 가리키는 원리를 생각하며 궁리한 끝에 ‘지남거(指南車)’를 고안하여 황제에게 바쳤다. 지남거의 앞에는 쇠붙이로 만든 작은 신선(神仙)을 붙였는데 이 신선의 손가락은 항상 정남향을 가리키도록 되어 있었다. 황제는 이 지남거에 의존하여 비로소 군대를 이끌고 무사히 치우의 포위망을 뚫고 나올 수가 있었다.

 

그러나 적은 싸움마다 반드시 승리를 거뒀으므로 사기가 충천해 있었다. 그래서 황제는 적의 사기를 떨어뜨리고, 자신의 군대의 사기를 높이기 위해 군고(軍鼓)를 만들었다. 그리고 기(虁)라는 짐승을 죽여 그 가죽을 북에 붙이고, 뇌수(雷獸, 상상의 동물)의 다리뼈를 북채로 삼았다. 군고의 북소리는 전방 200㎞까지 울려퍼졌고, 그 굉음은 치우군에게 경악과 공포를 심어주었다.

 

헌원이 여러 차례 싸워 치우에게 패하고도 다시 크게 군사를 일으키고 치우를 본받아 병기와 갑옷을 만들어 감히 몇번이고 싸움을 걸어왔다.

 

치우가 불같이 노하여 장수들에게 크게 싸워 위력을 보이도록 하였다. 치우의 군사는 헌원이 다시는 싸울 마음을 갖지 못하도록 하기 위하여 한 판 큰 싸움을 벌려 한 개의 진을 완전히 초토화 하였다. 이 때 비석박격기(飛石迫擊機)를 처음 사용하였는데 이 무기로 진을 이루고 진격하니 헌원의 군대는 끝내 저항하지 못하였다.

 

전쟁에 패한 헌원은 당시 명성이 높았던 자부선인(紫府仙人)을 찾아가 가르침을 구하였다. 이는 치우의 영걸스럽고 불가사의한 전법의 비밀을 알아내기 위해서 였다.

 

자부선인은 헌원에게 「 삼황내문경(三皇內文經)」을 주면서 공연히 싸움을 좋아하지 말고 마음을 고쳐 먹으라 고 가르쳤다.

 

삼황내문경은 예로부터 내려오던 동이겨레의 심신수련(心身修鍊)으로 치신득도(治身得道)하는 방법이 기록되어 있을 뿐만 아니라 동이겨레 고유의 사상과 철학과 종교에 관한 내용이 담겨져 있는 경전이었다.

 

7. 탁록지전, 단 한번의 패배

치우의 군대는 구리머리에 쇠이마(銅頭鐵額)를 한 81인의 용맹스러운 형제들을 비롯하여 용감하고 전투를 잘하는 묘민(苗民), 풍백, 우사가 합세하였다.

황제의 편에는 천녀(天女) 발(魃)과 응룡(應龍), 사방의 신들과 요괴들, 또 큰 봄, 작은 곰, 크고 작은 호랑이, 여우, 승냥이 등 맹수들을 동원하였다.

그들이 주로 싸운 곳은 탁록(涿鹿)인데 그 곳은 예전에 염제가 황제에게 패한 곳이기도 하다.

 

치우는 친히 전쟁에 나서기로 하고 구군(九軍)에 동원령을 내렸다. 구군 중 8군은 2군씩 나누어 4방향으로 포위, 진격하게 하고 천왕은 나머지 1군(보병과 기병 3천)을 직접 거느리고 헌원의 진 중앙을 향하여 진격하였다.

 

양쪽 군대의 전투가 벌어지자 과연 치우군대는 용맹스러움을 당해 낼 자가 없었다. 비록 황제의 용감무쌍한 야수들, 사방의 신들과 요괴들, 인간 세계의 여러 족속들이 있었지만 치우의 적수가 아니었다.

 

안개를 일으키는 능력을 갖고 있는 치우는 첫 전투에서 그 능력을 사용하여 전장을 짙은 안개로 뒤덮이게 했다. 황제군은 짙은 안개 속에서 전후좌우를 제대로 구분할 수 없게 되었고, 어둠 속에서 더 큰 실력을 발휘하는 요괴들을 주력으로 하는 치우군은 이를 틈타 공격한 결과 황제군을 크게 이겼다.

그러자 황제는 물을 모아 비를 내릴 수 있는 응룡(應龍)을 불러 치우에 대항하게 했으나, 치우는 비장의 무기인 바람의 신 풍백과 비의 신 우사를 출전시켰다. 응룡이 비록 비를 내리는 능력을 갖고 있었지만, 비의 신 우사의 능력에는 미치지 못했을 뿐 아니라 거기에 풍백의 능력까지 가세되었기 때문에 그들이 일으키는 폭풍우 앞에서 응룡은 속수무책으로 당해 사라지고 말았다.

 

풍백과 우사가 일으킨 폭풍우가 응룡을 격퇴시키는 것을 본 황제는 폭풍우를 진압하기 위해 자신의 딸인 발(妭)을 전장에 투입했다. 그녀가 발하는 열과 빛은 순식간에 폭풍우를 날려버렸다. 그후로 황제군은 두 번 다시 폭풍우로 인해 고생하는 일은 없었다.


안개와 폭풍우가 발에 의해 사라지고 개인적인 전투 능력 면에서 황제측에는 치우보다 우수한 응룡이 있었지만, 치우군에는 아직 우세한 점이 남아 있었다. 그것은 치우의 군대를 지휘하는 능력이었다. 치우의 작전 지휘 능력은 황제보다 뛰어났으며, 전장에서 그 기묘한 지휘로 황제군을 여전히 괴롭히고 있었다.

 

황제군의 원군은 서쪽으로부터 왔다. 곤륜(崑崙)의 서왕모(西王母)는 구천현녀낭랑(九天玄女娘娘)을 사자로 보내어 병법서인 『음부경(陰符經)』을 주었다. 이 책을 본 황제의 지휘 능력은 치우보다 우수해졌다.

 

천둥소리와 같은 굉음을 발하여 치우군의 사기를 떨어뜨리는 군고를 계속 울리며 황제의 지휘가 시작되었다. 발의 능력이 풍백과 우사의 능력을 완전히 봉쇄하자 하늘은 맑고 구름 한 점 없었다. 황제군은 응룡을 선봉에 세우고, 맹수의 무리로써 빈틈없는 전투 대형을 짜고 치우군을 몰아부쳤다. 이날 황제의 지휘 능력은 치우의 지휘 능력보다 우수했으므로, 지휘 능력이라는 유일한 장점마저 잃은 치우군은 싸움에서 완패했다. 운이 좋은 자를 빼고는 철저히 섬멸당하고 말았다. 치우는 하늘로 날아올라 전장을 탈출하려 했으나, 응룡의 추격을 받아 청구산(靑丘山)에서 붙잡히고 말았다.

 

황제는 치우가 부활하지 못하도록 그의 몸은 조각조각으로 나뉘어 두 곳에 매장했다. 치우의 무덤은 동평(東平)의 수장현(壽張縣, 산동성 양곡현 동남)과 그곳에서 80킬로미터 정도 떨어진 거야현(鉅野縣, 산동성 거야현)에 있다고 한다. 수장현의 무덤에는 머리와 몸체가, 거야현의 무덤에는 팔과 다리가 매장되어 있다고 하는데, 치우가 죽었을 당시 그의 피가 흘러간 곳이 해주(解州, 산서성)의 소금못이 되었다고 한다. 이 못은 소금이 많이 나는 곳으로 유명하다. 이 때 치우를 묶었던 차꼬와 수갑에 묻은 피에서 붉은 단풍나무(楓木)가 자랐다.

 

치우와 황제의 마지막 싸움은 탁록에서 있었고, 그 때 황제는 지남거(指南車)를 이용해 안개 속에서도 방향을 잡으며, 결국 응룡(應龍)과 자신의 딸인 태양을 다스리는 여신 (妭)까지 총동원하여 그를 쓰러뜨렸다고 전한다.

 

드디어 치우를 사로잡아 죽이고 제후들이 헌원을 높이므로 신농씨를 대신하여 천자가 되었다.

 

치우의 세력은 황제에게 패한 후 남하하여 나라를 세우는데 그게 묘족의 시조가 된다고 한다.

그런데 이 과정에서 황제 헌원의 제재는 전혀 없었다. 황제의 세력도 많이 줄어들어 이들을 막을 수 없었던 듯.

 

소지품 :

오병 : 칼, 끝이 갈라진 창, 세모창, 갈대창, 장창, 큰 활, 큰 도끼, 방패 중 다섯 가지. 기록에 따라 무기가 다르다. 6개의 팔에 들고서 전쟁에서 무쌍을 이루었다.

 

기타 :

치우는 전쟁에 능해 싸우면 반드시 승리했으므로 군신(軍神)으로 알려져 있다. 또 그는 무기의 발명자로도 유명하다. 치우가 발명한 것으로 전해지는 무기는 검(劍), 갑옷[鎧], 자루가 긴 창[矛], 쌍날창[戟], 창[戈], 석궁[弩]이 있다.

치우가 죽은 후 요마들이 날뛰니 황제는 치우의 얼굴을 그려 붙여 그가 살아서 헌원의 신하가 된 것처럼 위장하자 조용해졌다.

또한 중국의 고대 천문학에서는 꼬리가 굽어 깃발처럼 보이는 꼬리별[彗星]을 ‘치우기(蚩尤旗)’라고 하여 그 별이 나타나면 전쟁이 일어난다고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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