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판타지 이야기/중국

제곡 고신(帝嚳 高辛) - 오제

by 별빛아재 2020. 6. 22.
728x90
반응형

 

 

이름

 :  그의 성(姓)은 희(姬)이고 이름은 준(俊)이다. 제신, 고신, 제곡, 제준, 신제(辛帝) 등으로 불린다.

 

신분

 : 삼화오제 중 오제. 황제의 증손.

 

가족

 : 아버지는 교극(蟜極)이다. 교극의 아버지는 황제의 아들인 현효(玄囂)이므로 제곡은 황제의 증손이 된다.

첫째부인은 유태씨(有邰氏)의 딸 강원(姜原)으로 기(棄)를 낳았다.

둘째 부인은 유융씨(有娀氏)의 딸 간적(简狄)으로 설(契)을 낳았다.

셋째 부인은 진풍(陳豐)씨의 딸 경도(慶都)로 방훈(放勛)을 낳았다.

넷째 부인은 상의(常儀)라는 이름으로 지(摯)를 낳았다.

하늘로 올라가 태양의 여신 희화(羲和)와의 사이에서 아들인 해 10명을 두었고 달의 여신 상희(常羲)와의 사이에서 딸인 달 12명을 두었다.

 

업적

 : 절기를 만들다.

 

전설 :

1. 탄생

그의 어머니는 거인의 발자국을 밟아 제곡을 낳았으며, 그는 나면서부터 자신의 이름을 “준(俊)”이라 말했다고 한다. 어려서부터 총명하여 배우기를 좋아했으며 덕행이 고상하고 재능이 있어 천하에 이름을 드높였다.

 

2. 제위에 오르다.

제곡은 15세 때부터 당시 제왕인 전욱을 도와 공을 세우고 고신의 제후로 봉해져 호를 고신씨(高辛氏)라 불렀다. 그는 30세에 전욱의 뒤를 이어 제위에 등극해 도읍을 지금의 중국 하남성 상구시(河南省商丘市) 일대인 박(亳)으로 정했다. 제곡이 도읍을 박으로 옮긴 이유는 황하(黃河)의 홍수를 피하여 백성들을 재난으로부터 구제하기 위함이었다. 또한 그의 천도(遷都)로써 주변 씨족세력들의 위협에 대응하여 군대를 전장에 투입하기 편리해졌다. 그 후 제곡은 공공(共工)씨의 세력을 소탕하고 황하 중상류부터 장강 중상류까지 세력 범위를 넓혔다. 외적인 견융족(犬戎族)을 물리친 이후에는 내치에 집중하여 여러 민생 문제를 해결하는 데 주력했다.

 

3. 아들을 낳다.

첫째부인은 유태씨(有邰氏)의 딸 강원(姜原)으로 기(棄)를 낳았다. 강원은 들에 놀러 나갔다가 거인의 발자국을 보고 호기심이 생겼다. 그 발자국에 자신의 발을 맞추어보고 이상한 느낌을 받은 후 임신한다. 마침내 그녀는 달이 차자 이상한 살덩어리를 낳았으나 끔찍한 생각이 들어 그것을 골목길에 버렸더니 말과 소가 피해갔다. 다시 얼음판에 버렸더니 새가 날아와 날개로 덮어 보살폈다. 강원이 신기하게 여겨 다시 거두어 길렀는데 아이를 버렸다고 해서 이름을 ‘기(棄)’라 불렀다. 그가 바로 후직(后稷)으로 주왕조(周王朝)의 시조가 되었다.

 

둘째 부인은 유융씨(有娀氏)의 딸 간적(简狄)으로 설(契)을 낳았다. 어느 봄날에 간적이 여동생인 건재(建疵)를 데리고 강에서 미역을 감는데 그들의 머리 위로 현조(玄鳥) 한 마리가 날아오더니 알을 떨어뜨리고 갔다. 그녀는 알을 삼키고 임신하여 아들을 낳았다. 그의 이름은 설이며 아주 총명하고 어질었다. 설은 장성해서 우(禹)가 치수사업을 할 때 공을 세운다. 순(舜)임금 때 그는 교육의 책임자인 사도(司徒)가 되었다가 훗날 상(商) 땅에 봉해져 상(商)나라의 시조가 되었다.

 

셋째 부인은 진풍(陳豐)씨의 딸 경도(慶都)로 방훈(放勛)을 낳았다. 요는 제곡의 셋째 부인인 진풍(陳豐)씨의 딸 경도(慶都)가 낳은 아들로 이름은 ‘방훈(放勛)’이다. 어느 날 경도는 황하 강변을 거닐다가 하늘에서 내려온 적홍색의 거대한 용이 흩날리는 바람을 마시고 임신하여 아들을 낳았다. 그는 태어난 내력이 특이한 만큼 생김새도 보통사람과 달랐다. 그의 눈썹은 거꾸로 쓴 팔자 모양이었고 색깔 또한 다채로와 ‘요미팔채(堯眉八彩)’라는 말이 생겼다고 한다. 그가 훗날 화하(華夏) 역사상 위대한 성군(聖君)으로 추앙받는 제요(帝堯)이다.

 

넷째 부인은 상의(常儀)라는 이름으로 지(摯)를 낳았다. 비록 생모의 지위는 낮았으나 제곡의 아들 중 장자(長子)로서 제위를 이어받았다. 한때 지는 정사를 돌보지만 재능이 평범하여 별다른 성과가 없었으나 동생 방훈(放勛)은 자신의 봉읍을 흥성하게 발전시켜 백성들의 존경을 받는다. 백성들의 믿음을 잃은 지는 방훈에게 제위를 양보하게 되었다.

 

4. 절기를 만들다.

그가 다스리기 전 백성들의 생활방식은 해가 뜨면 일하고 해가 지면 쉬는 단순한 것이었다. 농사를 짓고 가축을 길렀으나 농사와 관련된 절기(節氣)를 구분할 방법이 없어 많은 제약이 따랐다. 이러한 어려움을 해결하고자 제곡은 천문 현상을 관찰하여 만물의 변화 법칙에 따라 절기를 구분하였다. 이로써 그는 사람들이 절기에 따라 농경 생활을 적절하게 도모하도록 지도하여 민생을 안정시켰다. 이는 농업 생산력을 크게 발전시킨 일이었다. 또한 그는 매 절기의 일들을 꼼꼼히 계획하고 신에 대한 제사도 정성을 다했다고 한다. 이 같은 행동은 모두 하늘의 뜻에 따르고자 한 것이다.

 

5. 봉황이 날아들다.

제곡은 음악을 매우 좋아하며 악사 함흑(黑)에게 '구초, 육렬, 육영 등의 노래를 만들게 하였다. 또 악수에게 전고, 종, 반 등 여러 악기를 제작하게 했다. 이리하여 64명 무용수들에게 모색찬란한 옷을 입혀 음악에 맞춰 추게 했다. 음악이 울려 퍼지자 봉황, 대적 등 기이한 새들이 전당(殿堂)에 운집하여 훨훨 춤을 추기 시작하였다. 옛날 사람들은 덕행이 고상 한 사람만이 봉황을 불러올 수 있다고 생각했다.

 

6. 딸을 반호에게 시집보내다.

제곡 제위 시기에 유씨 황후가 꿈 속에서 개가 하늘에서 내려와 다시 태어나는 꿈를 꾸었다. 그녀는 잠에서 깨어났는데 귓속이 매우 아팠다. 그래서 명의를 불러 귓속을 보게 했는데 귓속에서 세 촌(三寸) 크기의 금벌레가 기어 나왔다. 이것를 옥쟁반에 놓고 기르면서 호리병박 나뭇잎으로 덮 어주었는데 하루에 1촌(寸)씩 자라 몸이 일장 이척이나 되는 개가 되었다. 이 개의 이름을 임구라고 짓고 다른 이름으로 반호라고 불렀는데 오색찬란한 털을 가진 반호는 몸에는 금수로 된 문신이 있고 머리에는 24개 황색 반점이 있었다.

 

이 시기에 화하(華夏)족은 주위의 이민족들과 전쟁이 잦았다. 그중 견융족은 중원지역을 자주 침입하였는데 제곡은 수차례 정벌에 나섰으나 승리하지 못했다. 그는 고심 끝에 견융족의 수장인 오장군(吳將軍)의 머리를 베어오는 자에게 황금과 많은 땅을 나누어 주고 그의 딸을 주겠다는 방(榜)을 붙인다.

 

그날 밤 반호는 견융족의 진영으로 달려가 오장군이 방심한 틈을 타서 물어 죽이고 머리를 물고 돌아왔다. 신하들은 개에게 공주를 혼인시킬 수는 없다하며 좋은 먹이를 주는 것으로 이 일을 마무리하자 주장하였고, 공주는 제곡에게 천하를 향하여 한 약속을 저버릴 수 없다고 아뢰었다. 제곡은 신하들의 의견에 고민하다가 답답한 마음에 반호에게 물었다.

"내가 약속을 지키지 못한 것에 대해 화가 난 것이냐? 개와 인간은 결혼할 수 없지 않느냐?"

이 말을 들은 반호가 입을 열더니 사람의 말로 대답했다.

"​그것은 걱정하지 마십시요. 제가 금으로 된 종(鐘) 속에 들어가 일곱 낮, 일곱 밤을 지낸다면 사람이 될 수 있습니다."

제곡은 기이하게 생각하였으나 반호로 하여금 금으로 만든 종 속에서 일곱 낮, 일곱 밤을 지내도록 허락하였다.

엿새째가 되는 날 공주는 그가 어찌 되었는지 굶어죽지는 않았는지 궁금해져서 황금 종을 열어보았다.

반호는 몸이 사람으로 변해 있었는데 머리 만은 여전히 개의 모습이었다.

반호는 황금 종에서 걸어나와 옷을 걸쳤고 공주와 결혼하였다. 공주는 개 머리 모양의 모자를 썼다고 한다.

 

반호는 제곡의 딸과 예식을 치른 후 그녀를 업고 초목이 무성하고 인적이 드문 남산 깊숙이 들어갔다. 제곡은 딸을 너무 그리워하여 여러 차례 사람을 보냈으나 그때마다 폭풍우가 몰아치고 지축이 뒤흔들리는 듯 천지가 진동하여 산으로 들어갈 수가 없었다. 반호와 제곡의 딸은 남산에서 생활하면서 아들 여섯과 딸 여섯을 두었다.


소수민족인 사족들은 대대로 반호의 공적을 찬양하며 기리고 있다. 반호는 사족 들의 토템의 대상으로 숭배 받고 있다.

그가 중국 중원 지역을 둘러싼 이민족 중 남만의 시조가 되었다는 전설이 있다. 이와 관련된 기록은 『산해경(山海經)』과 『수신기(搜神記)』 등에 나타나 있다.

 

반호가 죽자 제곡의 딸은 중원으로 돌아와 힘들었던 생활상을 아버지 제곡에게 고하자 사람을 보내 딸의 후손들을 데려왔다. 그들은 폐쇄적인 환경에서 생활하여 화하족(華夏族)과 생활습관이 너무나 달랐다. 그들은 험한 산길에는 익숙하였으나 평지를 걷는 것에는 힘들어하였다. 심지어 말도 전혀 달라 함께 살 방법을 찾을 수 없었다. 제곡은 그들의 이런 습성을 측은히 여겨 중원 남부의 산지 일부를 하사하였다. 반호의 후손들이 번성해 인구가 점점 많아지자 그들을 ‘만이(蠻夷)’라 불렀다. 현재 중국 남방의 요족(瑤族)·사족(畲族) 등 소수민족들에게는 이러한 반호의 전설이 전해지고 있다.

 

7. 치세와 사망

널리 은택을 베풀어 사물을 이롭게 했지만 자신의 이익이 되지 않도록 했다. 총명해 먼 일을 알고, 현명해 미세한 것도 잘 살폈다. 하늘의 도리에 순응하고 백성이 급한 것이 무엇인 줄 알았다. 어질면서 위엄이 있고, 은혜로우면서 믿음이 있었으며, 자신을 수양하여 천하가 복종하였다. 땅에서 재물을 취하되 아껴서 썼으며, 만민을 어루만지고 가르쳐서 스스로 이익을 얻도록 이끌었다. 해와 달의 운행을 헤아려서 맞이하고 보냈으며, 귀신을 잘 알아 공경하는 마음으로 섬겼다.

하늘의 뜻에 따르고 백성들의 입장에서 생각하며 인의와 위엄을 아울러 쓰니 백성들이 믿고 따랐다.

 

제곡은 105세까지 장수하여 70년간 제위에 있었다고 전해진다. 그동안 천하는 잘 다스려지고 태평성세가 되어 백성들은 마음 놓고 생업에 종사할 수 있게 되었다. 그가 붕어하자 고신에서 장사지냈다고 한다. 현재의 제곡릉(帝嚳陵)은 그의 고향으로 알려진 중국 하남성 상구시에 위치해 있으며 하남(河南), 안휘(安徽), 강소(江蘇), 산동(山東) 등 인근 지역 사람들의 참배가 면면히 이어지고 있다.

 

8. 예가 아들들을 죽임

하늘로 올라간 제곡은 태양의 여신 희화(羲和)와의 사이에서 아들인 해 10명을 두었고 달의 여신 상희(常羲)와의 사이에서 딸인 달 12명을 두었다. 제곡은 아들들에게 하루에 한명씩 하늘에 오르도록 명을 내렸으나 어느날 10명의 아들들이 모두 하늘에 올라가는 일이 생겼다.

 

하늘에 10개의 태양이 뜨자 세상은 온통 불바다가 되어 작물은 다 말라죽고 물도 말라버려 인간들이 고통받게 되었다. 이에 제곡은 예(羿)를 보내 인간들을 구원하게 했는데 예가 좀 과격하게 일처리를 했다. 예는 산위로 올라가 10명의 태양 중 9명을 활로 쏘아 죽여버린 것이다. 예는 제곡의 딸인 항아의 남편으로 자신의 사위였다. 하지만 자신의 아들들을 죽인 것에 분노하여 예와 항아를 인간으로 만들어 지상으로 쫓아버렸다.

 

기타 :

제곡은 음악을 매우 좋아하여 각종 노래와 악기를 만들어 백성들을 즐겁게 하였다고 한다. 그는 악사(樂師)인 함흑(咸黑)에게 구초(九招)·육렬(六列)·육영(六英) 등의 노래를 만들게 하고 유수(有垂)에게 비(鼙)·고(鼓)·종(鐘)·경(磬)·취(吹)·영(苓)·관(管)·훈(壎)·지(篪)·도(鞀)·추(椎)·종(鐘) 등의 악기를 제작하게 했다. 이 곡조에 맞추어 연주하게 하니 새들이 날아와 춤을 추어 제곡은 크게 기뻐하였다고 한다.

반응형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