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
: 제순유우씨(帝舜有虞氏). 성은 우(虞), 또는 요(姚). 이름은 중화(重華)이고 우순(虞舜) 또는 제순유우(帝舜有虞)로도 부른다.
신분
: 전욱 고양의 후손. 창의(昌意)-전욱(顓頊)-궁선(窮蟬)-경강(敬康)-구망(句望)-교우(橋牛)-고수(瞽叟)-중화(重華)로 이어진다.
모습
: 한 쪽 눈에 눈동자가 두 개라고 한다. 그래서 이름을 중화(重華)라고 지었다.
가족
: 아버지는 고수(瞽叟)라 하고 장님이다. 어머니는 일찍 세상을 떠났고 계모를 들였는데 그녀에게서 상(象)이란 이복형제와 과수(㪙手)라는 이복오누이를 두었다.
상군은 전설상 요임금의 딸로 순의 아내인 아황이다. 상부인은 전설 속 부락연맹의 지도자였던 당요의 딸이자 우순의 아내인 여영이다.
순임금이 남방을 순시하다 창오의 들에 죽어 구의산에 묻히자 순의 두 아내인 아황과 여영이 동정호 상수(湘水) 지역을 지나다 거기 뛰어들어 죽었다고 한다. 두 사람은 동정호의 여신이 되었다.
순의 아들 상균(商均) 또한 아버지를 닮지 못해서 못나고 어리석어 순은 미리 하늘에 우(禹)를 후계자로 삼았다.
업적
: 성공적인 치수로 농토 증대
전설 :
1. 탄생
고수(瞽叟)라고 하는 눈 먼 사람이 있었다. 고(瞽)는 소경이란 뜻이고, 수(叟)는 늙은이란 뜻이니 그 이름 자체가 눈먼 늙은이란 의미이다. 제왕의 후손이나 여러 대를 거치면서 지위가 낮은 서민이 되어 가난하게 살았다.
어느 날 저녁 이상한 꿈을 꾸었다. 꿈 속에서 봉황 한 마리가 쌀을 물고 날아와 그에게 먹이면서 하는 말이 내 이름은 계(雞)로서 당신에게 아들을 주러 왔소 하더라는 것이었다. 그 후 아들을 하나 낳게 되었는데 이름을 순(舜)이라 하였다. 순은 한 쪽 눈에 눈동자가 두 개였으므로 그를 중화(重華)라 하였다.
순을 낳고 얼마되지 않아 그의 어머니가 세상을 떠났고 고수는 다른 아내를 맞았다. 그녀는 상(象)이란 아들과 과수(㪙手)란 딸을 낳았다.
2. 효도를 다하다.
계모는 상을 편애하여 순을 죽이고자 하였고 순은 부모가 죄를 짓지 않도록 하기 위해 이를 잘 피하면서 효도를 다하였다.
아버지 고수는 기록에 따라서는 어머니와 한통속이었다고도 하고, 우매해서, 혹은 시각에 장애가 있어서 그런 음모를 알아차리지 못했다고도 한다. 어느 쪽이든 순에게는 전혀 도움이 되지 않았다. 언젠가는 계모가 순을 죽이려고 우물을 파라고 한 뒤 순이 땅을 파는 동안 그 우물을 무너뜨려 생매장하려고 했다. 그러나 순은 이를 예상하고 미리 빠져나갈 구멍을 만들어 두었기 때문에 살아났다고 한다.
이런 일을 겪었는데도 순은 우물을 파라는 말에 반항하지도 않고 자신을 죽이려고 했다고 항의하지도 않았으며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효도를 다했다. 또한 어머니와 함께 자기를 죽이려고 한 동생 상에게도 우애를 잃지 않았다고 한다. 이에 대해 다른 사람이 "당신처럼 똑똑한 사람이 왜 그런 계모 치하에서 참고 지내느냐?"라고 묻자 순은 "아버지께는 어머니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하고 대답했다고 한다.
3. 분가하다.
순은 계모와 상에게 시달림을 받다 분가하여 역산을 갔다. 그리하여 역산(歷山) 기슭에 초가를 짓고 황무지를 개간하였다. 순은 기주(冀州)사람이다. 순은 역산(歷山)에서 농사를 지었고 뇌택(雷澤)에서 물고기를 잡았으며 황하의 물가에서 질그릇을 빚었고 수구(壽丘)에서 기물을 만들었으며 틈이 나면 부하(負夏)에서 장사를 하였다.
순이 역산에서 농사를 짓자 역산 사람들이 순에게 밭의 경계를 양보하였고 뇌택에서 물고기를 잡자 뇌택 사람들은 모두 거주지를 양보하였으며 황하의 물가에서 질그릇을 빚자 황하 강가에서 생산되는 기물들도 전부 조악하지 않았다.
일 년이 지나자 촌락이 이루어졌고 이 년이 지나자 읍이 되었으며 삼 년이 지나자 도시가 이루어졌다.
4. 제요가 순을 후계자로 삼고 시험하다.
순은 순종하며 자식된 도리를 지켰고 동생에게는 자애를 베풀었다. 순은 스무살에 효성이 지극하다고 소문이 났다. 서른 살에 요임금이 등용할 인물을 찾을 때 사악이 모두 다 우순을 추천하였다. 이에 요임금이 좋다고 하였다.
요임금은 그들의 추전을 받아들여 자신의 딸 아황(我皇)과 여영(女英)을 순에게 시집을 보냈고 자신의 아홉 아들들을 순과 함께 생활하게 하였다. 이에 이복동생인 상(象)은 순을 질투하여 그를 죽이고자 하였다.
하루는 순에게 창고 위에 올라 흙으로 마름을 올리게 한 후 계모는 아래에서 불을 질러 창고를 태워버렸다.
순은 즉시 삿갓 둘로 불길을 막으면서 내려와 도망쳐 죽음을 면할 수 있었다.
계모와 상은 기뻐하면서 순이 이미 죽었을 거라고 생각했다.
상은 순이 죽었으니 순의 아내인 요의 두 딸과 거문고를 자신의 것으로 하겠다 하였고 소와 양은 부모님께 드리겠다고 하였다.
상은 순의 방에 들어가 거문고를 뜯었다. 그러나 순이 돌아오자 상은 둘러대었는데 형님 생각에 가슴아파 하고 있었다고 거짓을 말하였다.
제요는 단주(丹朱)라고 하는 아들이 있었으나 그 자질이 부족하여 순을 후계자로 삼고자 하고 순을 시험하기 위해 여러가지 임무를 맡겼다.
5. 제요의 사흉(四凶)
환두가 공공을 천거했을 때 요는 쓸 수 없다 라고 말하면서 그를 공사(工師)로 등용했는데 과연 공공은 멋대로 행동하고 악을 일삼았다.
사악(四岳)이 홍수를 다스리는 인물로 곤을 추천했다. 요는 안된다고 생각했지만 사악이 억지로 그를 써보자고 요청했다.
할 수 없이 그를 썼지만 공적이 없었으므로 백관들의 마음이 편치 않았다.
삼묘가 강화(江華)와 형주(荊州)에서 여러차례 난을 일으켰다.
순은 순행에서 돌아와 제요에게 공공을 유릉(幽陵)으로 유배를 보내 북적(北狄)을 변화시키고 환두(驩兜)를 숭산(崇山)으로 내쳐서 남만(南蠻)을 변화시키고 삼묘를 삼위산(三危山)으로 쫓아내서 서융(西戎)을 변화시키고 곤을 우산(羽山)으로 추방해서 동이(東夷)를 변화시키게 하자고 청했다.
네 죄인을 처벌하니 천하가 모두 복종했다.
6. 제순, 제요에게 선양받아 제위에 오르다.
순이 여러 임무를 잘 수행하고 두 딸과의 가정생활도 원만하자, 요는 순을 등용하여 천하의 일을 맡겼다. 순은 선대 제왕들의 신하들의 후손을 찾아 적재적소에 임명하였으며 악한 후손들은 멀리 변방으로 유배하여 악인을 경계하였다. 순이 등용되어 20년이 지난 후, 요는 순을 섭정으로 삼고 은거하였다. 8년 후 요가 사망하자, 순은 요의 아들 단주(丹朱)에게 왕위를 양보하고 변방에 은거하였다. 그러나 백관과 백성들이 은거한 순을 찾아와 조회를 보고 재판을 치르자 천명을 거스를 수 없음을 깨닫고 돌아와 왕이 되었다고 한다.
7. 치수에 성공하다.
순은 왕위에 즉위한 이후 여러 신하들을 전문적인 직분에 따라 임명하였으며 사방의 오랑캐를 정벌하고 회유하여 넓은 강역에까지 통치가 미치게 되었다.
특히 요 임금 말기부터 이어져 온 홍수 문제는 매년 끊임없는 피해를 입혔기에 국가의 모든 관리보다 가장 우선시되었으며, 순 임금이 민심을 얻으려면 치수 관리가 시급했다. 치수 관리를 하던 곤이 9년이 지나도 수습을 못하자 사형에 처했으나, 치수를 다스리기 위해 나라에서 치수 관리를 가장 잘하는 처형당한 곤의 아들인 우를 등용했다.
우(禹)에게 사공(司空)이란 직책을 맡겨 마침내 치수에 성공하였다. 우의 성공적인 치수로 농토가 증대되고 천하의 모든 사람들이 순왕의 뛰어난 인재 등용을 칭송하였다. 순왕은 우를 치하하며 그에게 구슬을 하사하였다.
8. 제순의 사흉(四凶)
제순의 시대에도 사흉이 있었는데,
예전에 제홍씨(帝鴻氏)에게는 못난 자식이 있어 의로움을 어그러뜨리고 나쁜 짓을 감추며 흉악한 행동을 즐겼으므로 세상사람들이 그를 혼돈(渾沌,야만적이고 미개하다)이라 불렀다.
소호씨(少皥氏)에게도 못난 자식이 있어 신의를 저버리고 충직함을 몹씨 꺼리며 나쁜 말 꾸미기를 좋아했으므로 그를 궁기(窮奇,괴팍하기 그지없다)라 불렀다.
전욱씨(顓頊氏)에게도 못난 자식이 있어 교화할 수 없었고 좋은 말과 나쁜 말을 알지 못했으므로 세상 사람들은 그를 도올(檮杌,흉악하기 그지없다)이라 하였다.
요의 시대에 이르러서도 그들을 없애지 못했다. 진운씨(縉雲氏)에게도 못난 자식이 있어 음식을 탐하고 재물을 탐해 세상 사람들이 그를 도철(饕餮,탐욕스럽다)이라 불렀다.
순이 사문(四門)으로 찾아온 손님들을 접대할 때에 이들 사흉(四凶)의 족속을 사예(四裔) 머나먼 변방으로 옮겨서 짐승의 형상을 한 산신(山神)을 제어하게 하자 사문이 활짝 열리고 흉악한 이들이 없어졌다.
9. 우에게 선양하다.
우의 공로가 뛰어났고, 순의 아들 상균(商均)이 왕위에 적합하지 않았기 때문에 순은 재위 22년 만에 우를 하늘에 천거하여 후계자로 삼았으며, 섭정을 맡겼다. 재위 39년에 남쪽을 순행하다가 창오(蒼梧)의 들에서 사망하였다.
기타 :
후대의 역사서에 기술된 바와는 달리 죽서기년에는 요가 감금되었다는 언급이 나온다.
"옛날에 요의 덕이 쇠하였고, 순에게 갇히게 된다. 순은 요를 감금하고, 다시 단주를 막아서 부친과 서로 만날 수 없게 하였다."
또한 상서에도 요의 중신들을 추방하거나 처형한 기록이 있다.
'공공을 유주에 유배시키고, 환도를 숭산으로 쫓아내고, 삼묘는 삼위로 축출했으며, 곤을 우산에서 죽였다. 네 명의 죄를 처벌하자 천하가 복종했다.'
한비자 36편에서 언급한 내용은 유가들의 주장을 소개한 것이며, 한비자 51편인 충효편에서 한비자가 직접 설명하는 순의 모습은 전혀 다르다.
'고수는 순의 아버지지만 순은 그를 추방했다. 상은 순의 동생이지만 순은 그를 죽였다. 아버지를 추방하고 동생을 죽였으니 어질다고 말할 수 없다. 요의 두 딸을 아내로 삼았고 요의 천하를 탈취했으니 의롭다고 말할 수 없다. 어질지도 의롭지도 않으니 밝다고 말할 수 없다.'
유가의 기록에서 순은 성천자 요에게서 왕위를 선양받은 이상적인 성인군자의 모습으로 묘사된다. 가정에서는 부모와 형제들이 순을 죽이려고 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효도를 다하고 우애를 잃지 않았으며, 사회적으로는 그 뛰어난 인격으로 가는 곳마다 사람들을 교화했기 때문에 명망을 얻어 요에게서 선양을 받았다는 것이다.
그 외에도 야사에 따르면 순 임금이 신하들에게 우물물을 길어서 깨진 독(판본에 따라 망태기)에다 물을 부으라는 명령을 내렸다. 그러자 대부분의 신하들은 일하는 척하다가 그냥 나간 반면 한 신하는 우물물이 마르도록 깨진 독에다 물을 부었는데 우물 밑에 금덩이가 있었다. 그 신하가 금덩이를 가지고 와서 순 임금에게 바쳤더니 그거는 충성스러운 신하에게 주는 상이라고 신하에게 금덩이를 하사했다는 이야기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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