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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타지 이야기/중국

전욱 고양(顓頊 高陽) - 오제, 북방, 수(水)의 신

by 별빛아재 2020. 6.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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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욱고양씨. 출처 : 구글 검색 >

이름

 : 전욱고양씨(顓頊高陽氏). 성은 희(姬)이고 이름은 건황(乾荒)이다.

 

신분

 : 삼황오제 중 오제. 황제의 손자(혹은 증손자). 북방의 상제. 오행의 수(水).

 

가족

 : 황제의 아내 뇌조(雷祖)가 창의(昌意)를 낳았고 창의와 촉산씨(蜀山氏)의 딸 창박(昌僕)이 결합하여 전욱을 낳았다. 창의는 황제의 아들이고 전욱은 황제의 손자가 된다. 자식으로는 궁선(窮蟬)이 있다.

 

서북해 바깥 흑수의 북쪽에 한 쌍의 날개를 달고 있는 사람들이 있다. 이들을 묘민(苗民)이라 한다. 전욱이 환두(驩兜)를 낳고 환두가 묘민을 낳았다. 묘민은 성씨가 리(厘)이고 고기를 먹고 산다. 묘민국은 장산(章山)에 있다.

 

업적

 : 절지천통(絶地天通) - 천계와 인간계 사이의 통로를 막았다.

 

전설 :

1. 탄생

산해경에 따르면, 그의 아버지인 창의는 하늘나라에서 죄를 범해 인간세계로 쫓겨나 약수에서 살았으며 그곳에서 한류를 낳았는데, 한류는 생긴 것이 목이 길고 귀는 작고, 사람의 얼굴에 돼지 입을 하고 있었으며, 몸은 기린 같았고 다리 두개가 한데 붙어 있었으며 발은 돼지의 발이었다고 한다. 이러한 한류가 요자씨의 딸 아녀를 아내로 맞아 낳은 아들이 바로 전욱인데, 생김새 또한 자신의 아버지인 한류를 닮았다고 한다.(《산해경》에서는 전욱이 황제의 증손자로 나온다.)

 

창의는 재덕이 평범하여 제위를 계승하기에는 부족하다 여겨져 약수(若水)지역의 제후로 봉해졌다. 그는 그 지역의 토착세력인 촉산(蜀山)씨의 딸을 아내로 맞아 전욱을 낳았다.(《세본》,《사기》에서는 황제의 손자로 나온다.)

 

2. 유년 시절을 소호 금천의 나라에서 보내다.

전욱에 대한 다른 이야기로는, 같은 오제인 소호 금천이 동방 바다 바깥 새들의 왕국을 세울 무렵에 당시 어린 시절의 전욱이 그곳에 놀러 갔으며, 그때 그는 숙부인 소호를 도와 국정을 돌보았다고 하는데, 이때가 전욱이 10살 때였다고 한다. 전욱이 어른이 되자(이때가 20살이었다고 한다) 중국으로 다시 돌아왔다.

 

3. 고양 지방을 다스리다.

전욱은 중국으로 돌아와 고양 지방의 제후가 되었고 사람들은 그를 고양씨라고 불렀다.

그의 정치 방식은 상당히 과격했는데 해, 달, 별을 북쪽 하늘에 묶어놓아 한쪽은 영원한 낮이 한쪽은 영원한 밤이 계속되었다. 당연히 기후가 엉망진창이 되어서 한쪽은 가뭄이, 한쪽은 추위와 작물이 자라지 않는 현상이 발생했다.

예법을 전한답시고 남자를 여자보다 우위에 두었는데 심지어 길에서조차 남자가 지나가면 여자는 무조건 비켜줘야 하는 상황으로까지 만들어 성차별을 만들기도 했다.

 

4. 전욱과 공공의 전쟁

결국 전욱의 과격한 정책은 많은 신들과 인간들의 반발을 불러일으키게 된다. 그들 중 비교적 큰 씨족 부락의 수장인 수신 공공(共工)은 전욱의 통치에 불복하고 군사를 조직하여 전쟁을 일으켰다. 전욱이 차지하고 있던 최고신의 자리를 빼앗고자 한 것이다. 공공은 성이 강(姜)씨로 염제(炎帝)의 후예이며 축융(祝融)의 아들로 용맹한 인물이었으며 붉은 머리칼에 뱀의 몸을 한 용맹무쌍한 신이었다.

 

그는 남방의 신 신농(神農)의 신하로서 황제에게 패한 주군의 원한을 갚기 위해서라는 명분으로 전쟁을 일으켰다.

 

전욱은 모든 부하 신들을 동원해 전력을 다해 싸워 공공의 반란을 진압할 수 있었다. 싸움에 패해 화가 난 공공은 그때 하늘을 떠받치고 있던 부주산(不周山)을 머리로 힘껏 들이받았다. 그러자 하늘과 땅이 요동쳐 서북쪽이 높아지고 동남쪽이 꺼져 들어가면서 북쪽에 묶여 있던 해와 달과 별들이 오늘날 우리가 보는 천체의 형태로 운행되기 시작하고 강물은 동남쪽으로 흘러 바다를 이루게 되었다고 전한다.

 

< 전욱고양씨. 출처 : 구글 검색 >

5. 왕위에 오르다.

공공과의 제위 다툼에서 승리한 전욱은 황제의 뒤를 이어 왕위에 오른다. 그리곤 더욱 과격한 정책을 펼친다.

 

그는 이상한 남녀차별법을 만들어서 여자들을 괴롭혔다. 곧 여자들은 길을 가다가 맞은편에서 남자가 오면 반드시 길 옆으로 몸을 피해야만 했다. 만일 그냥 지나가면 사악한 여자로 간주되어 곧바로 체포되었다. 그리고는 요사스러운 기운을 없애야 한다고 무당을 시켜 한바탕 푸닥거리를 한 다음 석방했다.

 

6. 절지천통(絶地天通)을 하다.

절지천통이란 하늘과 땅을 연결하는 길을 막아 서로 소통을 할 수 없도록 만든 것이다. 그 이전에는 하늘과 땅을 사람이든 신이든 자유롭게 왕래할 수 있었는데 하늘을 들어올리고 땅을 내리눌러 아무나 오르고 내릴 수 없게 만든 것이다.

 

전욱이 이와 같은 이를 벌인 것은, 소호 금천 때 구려가 덕을 어지렵혀 민간의 신들이 뒤섞이게 되었고 지상의 인간들이 하늘의 신들과 한 패가 되어 하늘나라를 어지럽히는 전쟁을 일으키는 사건도 있어 인간과 신들의 구별을 위해서라고 명분을 세웠지만, 사실은 전욱이 하늘에 제사 지내는 권리를 독점하여 신권정치를 하기 위해서라고 한다.

 

전욱이 노동(老童)을 낳았고, 노동이 두 아들을 낳았는데 그중 하나가 중(重)이고 하나는 려(黎)였다.

전욱은 중(重)을 남정(南正)에 임명하여 천문과 신(神)에 대한 제사를 관장하는 임무를 내리며 하늘을 받치라 하고, 여(黎)는 화정(火正)에 임명하여 지리(地理)에 관한 일과 민정(民政)을 돌보는 임무를 내리며 땅을 누르고 있으라 했다. 그 후로 땅과 하늘이 갈라져 왕래가 끊겼다. 이후 하늘에 대한 제사를 전문적으로 행하는 관리가 생겨 제사를 성대하고 신성하게 치르게 되었다. 하지만 백성들은 마음대로 제사를 지낼 수 없게 되었는데 이로 인해 고대 사회에서 귀천의 차이가 생겨났다는 주장도 있다.

 

이 하늘과 땅을 끊어버린 사건 이후로부터 신과 인간은 더 이상 뒤섞이지 않고 질서를 되찾았고, 인간세계와 하늘나라가 평안해졌다고 하지만, 인간들 입장에서는 인간들이 고통을 받을 떄 신들에게 직접 올라가 하소연할 수가 있는 방법 자체가 완전히 사라진 것을 뜻하기에 마냥 좋은 편은 아니었다고 한다. 이후로 인간은 자신들의 소망을 신에게 전달해줄 심부름꾼이 필요했고, 그 역할은 무사, 즉 바로 샤먼들이 담당하게 된 계기가 되었다고 한다.

 

  이때 중과 여는 신에 대한 제사를 주기적으로 지내기 위하여 일정한 시간 간격을 측정해야 했으므로 해와 달을 관측하기 시작했다. 그러한 관측기록들이 오랜 기간에 걸쳐 축적되면서 점차 해와 달의 주기에 대한 비교적 정확한 지식이 형성되었다. 『상서(商書)』 「요전(堯典)」에 “주기[朞]는 3백 6순 6일이다(朞三百有六旬有六日)”라고 하여 1년을 366일로 계산했는데 이는 중과 여 및 그 후대 사람들이 장기간에 걸쳐 축적한 경험의 결과라 할 수 있다. 과거 유목민이나 농경민은 직접적인 생산 경험을 통해 자연계의 단순한 법칙을 터득할 수 있었다. 하지만 해와 달의 운행, 세시(歲時) 계산법 등은 오랜 기간의 관측과 기록에 의하지 않고서는 계산해내기 어려운 일이다. 당시는 유목민과 농경민 모두 생산 활동에 전념해야 했으므로 별도로 시간을 들여 정밀한 관측 작업을 진행할 여유가 없었다. 그러한 일은 전문 종사자를 필요로 했는데 중과 여로 인해 역법(曆法)의 혜택이 세상 사람들에게 비로소 전해지게 된 것이다.

 

7. 사망

전욱은 78년 동안 임금으로 있다가 91세쯤에 죽었다고 한다. 동북 대해의 바깥 대황 가운데 하수가 흘러가는 곳에 부우산(附禺山)이 있다. 전욱이 묻힌 곳은  무우산(務偶山)(부우산과 무우산은 같은 곳인데 오랜 시간이 지나며 잘못 전달된 것으로 보임)의 남쪽이고 아홉 명의 빈(嬪)과 비(妃)가 이 산 북쪽에 묻혔다. 네 마리의 뱀이 그들을 보호한다. 그리고 이 산에는 잘라 먹어도 먹어도 계속 불어나는 시육이 산다고 한다. 사방 삼백 리에 달하며 무덤 남쪽에 제준림(帝俊林)이란 대나무 숲이 있다. 그 숲의 대나무 한 그루면 배를 만들 수 있다.

 

그런데, 괴팍하고도 다면적 성격을 지녔던 전욱은 죽고 난 뒤에 다른 천제들과 다르게 기이한 변화를 겪었다고 하는데, 산해경에 따르면 "반인반어의 물고기가 있었는데, 이름하여 어부라고 한다. 전욱이 죽어 부활한 것이다. 바람이 북쪽에서 불어오면 샘물이 바람을 맞아 솟구쳐 오르는데, 그 때 뱀이 물고기로 변한다. 그것이 바로 어부로, 전욱이 죽어 부활한 것이다."라고 기록되어 있는데, 이를 보면은 전욱이 부활할 때 반은 사람이고, 반은 물고기와 같은 모습이 된 것으로 보인다.

 

 

< 우강(禺强). 출처 : 구글 검색 >

보좌신

 : 전욱의 보좌신으로는 "우강"이 있는데, 우강은 북쪽 바다의 신이자 풍신으로, 달리 현명이라고 불린다고 한다. 나이는 전욱보다 많았으나, 전욱을 도와 얼음과 눈으로 뒤덮힌 북방 1만 2000리를 다스렸으며, 그의 아버지 우호는 동해바다에 사는 바다의 신이라고 한다. 우호는 사람의 얼굴에, 새의 몸을 하고 있으며, 노란 뱀 두 마리를 귀에 걸고 다른 두 마리는 발로 밟고 있는 모습으로 그려진다고 한다. 그와 동시에, 우강은 후대에 북서풍이 역병을 주관하는 이야기가 있었다라는 점으로 인해 전염병의 신으로 여겨진다고도 한다.

북쪽 끝머리에 우강이라는 신인이 산다. 사람 얼굴에 새 몸을 하고 있으며 귀에 푸른 뱀 두 마리를 꽂았고 발밑에도 푸른 뱀 두 마리를 밟고 있다. 이것은 그가 바람의 신일 때 모습이다.

그가 수신(水神)일 때는 물고기 몸에 손과 발이 달렸으며 두 마리 용을 타고 다닌다.

 

자손들 :

 동진(東晋) 시대에 편찬된 설화집인 『수신기(搜神記)』에 따르면 전욱에게 다양한 개성을 지닌 자손들이 있었다고 한다. 이들 중 아들 노동(老童)과 태자장금(太子長琴)은 아버지를 닮아 음악적 재능이 뛰어났다. 노동은 아름다운 목소리를 지녔고 태자장금은 좋은 노래를 작곡했다 한다.

 

그러나 아버지의 괴팍하고 독한 성품을 이어받은 아들도 있었으니 인간에게 학질을 옮기는 학귀(瘧鬼), 도깨비인 망량(魍魎), 어린아이에게 경기를 일으키는 소아귀(小兒鬼), 사람의 얼굴에 호랑이의 몸을 한 흉악한 괴물인 도올(檮杌) 등이 그들이다.

 

또한 궁선(窮蟬)이라는 아들은 부뚜막신이 되어 한 집안의 숭배를 받으며 살았다. 부뚜막신은 조왕신(竈王神)이라고도 하며 아궁이 불을 비롯한 부엌 일을 맡은 신이다.

 

이 중 태어나자마자 죽었다고 나오는 아들들은 망량귀, 학귀, 소아귀이다.

 

그 외에 손자인 중과 려가 있다.

여는 지상에 내려와 열이라고 하는 아들을 낳았는데, 이 열은 사람의 얼굴은 하고 있었으나 팔이 없었고 두 다리가 머리 위에 달려 있었다고 한다.

 

전욱의 자손 중에는 팽조(彭祖)가 유명한데 팽조는 전욱의 현손(玄孫)이다. 팽조의 아버지 육종(陸終)은 귀방씨(鬼方氏)의 딸인 여희(女嬇)를 아내로 맞아들였다. 여희가 임신을 하여 삼년이 지났는데도 아이가 태어나지 않았다. 그래서 왼쪽 겨드랑이를 가르니 세 명의 아이들이 나왔고 오른쪽 겨드랑이를 가르니 또 세명이 나왔다.

 

팽조는 그 여섯 명의 아이들 중 하나로 그의 성은 전(錢)이고 이름은 갱(鏗)이라 했다. 그는 요순시대부터 팔백여 년을 살았는데 죽을 때도 단명함을 탄식했다한다.

 

소유물 :

시육(視肉) : 취육(聚肉)이라고도 한다. 살을 베어도 죽지 않고 다시 자라는 소. 혹은 소의 간처럼 생긴 고깃덩어리로 눈이 두 개 있다고 한다.

 

기타 :

음악을 좋아하는 의외의 면도 나온다.

열은 대황 서쪽 끝 일월산이라는 곳에 오거천문, 태양과 달이 들어가는 곳에 살면서 자신의 아버지를 도와 태양과 달, 그리고 별들의 운행을 다스렸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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