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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타지 이야기/이집트

토트(Thoth, Thot, Θωθ, Djehuti) - 지식,과학,언어,서기,시간,달의 신

by 별빛아재 2020. 3.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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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트(Thoth, Thot, Θωθ, Djehuti)는 고대 이집트 신화에 등장하는 중요한 신으로서, 지식과 과학, 언어, 서기, 시간, 달의 신이다. 주로 따오기나 비비의 머리에 사람의 몸을 한 모습으로 묘사된다. 주 신전이 있었던 케메누(헤르모폴리스)뿐만 아니라 아비도스 등 이집트 전역에서 숭배되었다. 지혜와 정의의 여신 마트는 토트의 아내이다. 토트는 창조에 관여한 신 중 하나로 보이며, 고대 이집트의 문자였던 신성 문자(히에로글리프)를 발명하여 인류에게 준 것으로 알려져있다.  그의 모습은 흔히 사람이 몸뚱이와 이비스새(따오기 종류)의 머리를 가진 형상으로 표현되며, 이비스새와 비비(원숭이 모양)는 이 신의 성수로 알려져 있다.

 

여신 세스헤트는 그의 여성형이다. 이쪽은 건축의 여신이기도 하며 좀 더 명확하게 자를 들고 있는 모습에 머리는 초승달 모양의 왕관을 쓰고 있다. 아예 세스헤트와 토트가 부부인것으로 묘사하는 곳도 있는데, 사실은 토트와 동일한 어원에서 변화한 이름이라고 한다. 고서에서 "토트가 그 양을 기록하고, 세스헤트가 그 액수를 조사했다."라는 식의 문장도 발견됐다. 세스헤트는 토트의 딸로 해석되기도 하는데 그녀의 어머니는 마트이다.

 

원래 이집트식 이름은 제후티 또는 제프티로, 토트는 그리스에서 부르는 이름이다. 후대에는 혼합주의 신학에 따라 라와 합쳐져서 라-제후티가 되어 태양까지 관장한다.

 

모습이 따오기 머리를 한 인간, 혹은 개코원숭이 머리를 하고 있다고 한다. 모든 일을 기록한다고 하며 마술이나 모든 비밀이 수록된 토트의 서란 책을 가지고 있다고 한다.

 

이집트 고고학자이자 작가인 테오도어 호프너에 의하면 토트의 고대 이집트어 본 명칭은 ḏḥw(제후)에서 기원한 ḏḥwty(제후티)로 쓰였다고 한다. 또한 ḏḥw는 고어로 따오기(학)를 뜻하는 hbj에서 번형되었다. 이는 그의 이름이 따오기에서 유래했음을 보여준다. 고대 이집트에서는 ḏiḥautī라고 발음 되었을 것이라고 추정되고 있다. 후에 이 신의 이름은 고대 그리스로 넘어가 그리스 문자 표기법에 따라 Θωθ, Thōth 또는 Theut로 표기 되어 현재에 이르고 있다.

 

토트는 서술되는 문서의 주제에 따라 다른 이름들로 쓰였으며, 그의 이름을 따 붙여진 파라오의 이름도 공식적으로 최소한 5개의 다른 이름이 있는 것으로 기록되어있다. 그는 각각 아, 솁스, 케메누의 군주, 마트의 군주, 마트의 남편, 아스텐, 켄티, 메히, 합, 아안등으로 불리었으며, 후기 이집트에서는 태양신 라와 합쳐져서 라-제후티로도 불렸다.

 

헤르모폴리스의 기록에 따르면 토트는 스스로 말로써 탄생하였는데, 그 때문인지 종종 태양신 라의 혀이자 심장으로 여겨졌다. 하지만 다른 기록(피라미드텍스트)에서는 대지의 신 게브와 하늘의 여신 누트의 아들로써 이시스의 남매지간으로 등장하기도 한다.

그는 이집트 종교 초창기에는 시간과 달력을 표기하는 달의 신으로 등장하였지만, 과학과 문학, 예술, 언어, 서기, 지식의 신으로 발전하였다.

 

이집트 전설에 따르면 원래 1년이 360일이었다. 위대한 태양신 라가 이집트를 다스리고 있을 때 지식의 신 토트는 하늘의 여신 누트가 낳은 아이가 언젠가 이집트를 다스릴거라 예언을 하였다. 이것을 괘씸하게 여기고 화가난 태양신 라는 1년 360일중 어느 날에도 아이를 낳지 못한다는 저주를 누트에게 내리고 누트는 상심하였다. 누트는 토트를 찾아가서 하소연하였고 누트를 짝사랑한 토트가 방법을 생각해냈다.

 

토트는 달의 신 콘수가 내기(세네트 게임)를 하여 달의 빛을 얻었고 세상을 5일간 비추기에 충분한 양이었다. 그래서 1년이 365일이 되었다. 또한 1년 내내 보름달이였던 달이 낮에 준 빛만큼 힘을 잃어 반달과 초승달등으로 모양이 주기적으로 변하게 되었다.

 

토트의 지혜로 만들어진 5일 동안 누트는 다섯 명의 아이를 출산하였다. 오시리스와 세트가 그들 중에 있었다. 당시에 장남 오시리스는 이집트의 위대한 왕 인류의 구세주가 탄생한 것으로 소식이 전하여졌다. 오시리스는 바로 이집트 고대 왕조의 창시자인 호루스, 또는 메네스의 부친으로 알려져 있다.

 

또 마법의 여신 이시스에게 마법을 가르쳐준 스승이 토트라고 한다.

 

세트의 시기로 오시리스가 살해된 후 그의 아내인 이시스는 오시리스의 시신을 찾아내 부활의식을 통하여 저승의 신으로써 부활시켰다. 하지만 오시리스는 저승에 있어서 이시스는 세트에게 복수를 할 아이를 임신 할 수가 없었는데, 부활 의식 이후 세트에게 잡혀 감옥에 갇혀 있던 이시스에게 토트가 찾아와 임신 사실을 알렸다. 토트의 도움으로 피신한 이시스는 세트에게 임신 사실을 숨길 수 있었다.

 

그녀는 자신을 수호하는 일곱마리의 뱀(또는 전갈)과 함께 부토의 저습지에서 아들 호루스를 낳았다. 그때부터 호루스가 자기 아버지의 복수를 하고 세습권을 주장할 수 있는 성년이 될 때까지 숨어서 아들을 키웠다.

후에 아들은 독사로 변한 세트에게 물려 혼수상태로 빠졌는데, 토트가 내려와 태양신 라의 힘으로 호루스를 치료하고 태양이 보호받는 마법으로 호루스가 보호 받을 것이라며 약속하고는 태양신 라에게 돌아갔다. 호루스가 치료 받는 기간동안 토트의 말대로 태양의 배는 멈추어 암흑이 이집트를 다스렸다.

 

하늘에서는 따오기의 머리로 땅에서는 비비의 머리로 바뀐다. 또 눈금을 새긴 갈대를 들고 달 모양의 원반을 쓴 모습으로 나오기도 하는데, 이때 토트는 시간의 측정자를 의미한다.

 

호루스의 눈은 태양을 의미하는데, 호루스의 눈의 반사 이미지, 즉 왼쪽 눈은 달의 신 토트를 의미한다.

 

세트와 호루스의 왕위 다툼에서 다른 신들이 갈팡질팡할 때 태양신 라만이 일관되게 세트를 지지한 것처럼 유일하게 호루스를 일관되게 지지한 신이다. 토트는 이시스가 오시리스 부활의식을 마친 후 토트가 그녀를 찾아가 아이를 임신했다고 알리는 역할을 한다. 세트의 눈을 피해 피신할 수 있도록 하여 출산을 돕고 숨어서 키울 수 있게 하였다. 호루스의 존재를 알아챈 세트가 전갈로 변신해 아직 어린 호루스를 맹독으로 물고는 도망을 갔는데, 토트가 이시스에게 라의 진실된 이름을 귀뜸해주고 라를 속이는 법을 알려줘 태양신의 권능으로 호루스가 치유되게 하였다. 이시스에게 약점을 잡힌 라는 꼼짝 없이 배를 멈추고 호루스의 치유를 도와야 했다. 후일 성인이 된 호루스는 세트를 이겨 아버지의 복수를 마치나 그만 세트에게 한 쪽눈을 잃게 되는데, 토트가 달의 힘으로 치유해주었다. 호루스의 눈을 태양의 눈이자 달의 눈이라고 부르는 이유. 오른쪽 눈은 태양의 눈, 왼쪽 눈은 달의 눈이다. 호루스가 세상을 꿰뚫어 본다는 것은 이런 설정.

이집트 신화 속에서 토트는 거의 모든 싸움에 등장하는데, 일종의 중재자 역할이다. 질서를 상징하는 신과 혼돈을 상징하는 신이 싸울 경우 한쪽이 일방적으로 지고있을 때 그 쪽 편을 들어주는 경향이 강하다. 그는 세 전쟁을 지켜보았는데 첫번째 싸움이 라와 아펩간의 싸움이고, 두번째 싸움은 대호루스와 세트간의 싸움, 세번째 싸움이 호루스와 세트간의 싸움이였다.

 

에메랄드의 서는 토트가 에메랄드 원판 위에 빛의 글자로 세상의 모든 지식을 새겼다고 전해지는 전설속의 책이다. 여러장으로 이루어졌으며 첫장을 보면 우주의 원리를 깨우치고 불로장생한다는 설이 있다. 토트의 서라고도 한다

 

사자의 서에도 토트가 등장하는데, 심장의 무게 달기 의식의 서기관으로 나온다.

고대 이집트 사회에서 토트는 사제와 서기, 역사가와 철학자, 도서관을 수호하는 신이였다. 이런 지식인층을 대표하는 신이다 보니 이들이 기록할 것이 분명한 신화들에 토트가 돋보이는 것은 우연이 아니다.

콥트 교회에서 사용하는 콥트력의 1월을 '토트'(Thout)라고 부른다. 고대 이집트 신 토트에서 유래한 것이다. 율리우스력에 따르면 8월 '어거스트'(August).

 

헤르모폴리스의 신탁자들의 말에 의하면, 토트는 우주의 참다운 조화의 신이므로, 헤르모폴리스 마그나에서 세계의 알을 부화시킨 따오기야말로 토트였다는 것이다. 그들은 또 다음과 같은 것도 가르쳤다. 토트가 천지창조의 대과업을 완성했을 때, 혼돈 속에서 일어나 입술을 벌리고 말하자 그 음성이 네 명의 남신과 이어서 네 명의 여신으로 되었다는 것이다.

 

그런 이유로 나중에 헤르모폴리스는 크무누(khmounou), 즉 '여덟 신의 거리'로 불리게 되었다. 뚜렷한 개성이 없는 신은 소리(음성)를 내어 영원한 것을 만들어 냈다. 몇몇 문서에 의하면, 그들은 태양이 계속 움직이도록 아침 저녁으로 찬미하는 노래를 불렀다고도 한다.

 

토트는 마법의 주문(呪文)을 외는 목소리를 가졌는 데, 그가 충실히 모시던 주인 오시리스가 살해되자 그 목소리를 이용하여 주인을 다시 살리고 그 육체를 회복시켰다. 그런 다음 그는 오시리스의 아내인 이시스를 도와 고아인 호루스를 모든 위험으로부터 지켰으며, 특히 신들의 명령을 받은 그가 전갈에 물린 호루스의 몸에서 독액을 제거했다는 이야기가 전해지고 있다.

 

또 후에는 호루스와 세트와의 사이에 벌어진 격렬한 싸움을 말리고, 자기의 침을 뱉어 둘의 상처를 치료해주기도 했다. 그리고 팽팽히 맞선 호루스와 세트가 헤르모 폴리스에서 열린 신들의 법정에 나갔을 때는 우푸레부이, 즉 '두 사람의 싸움을 판가름하는 자'라는 칭호에 어울리게 적대자들에게 판결을 내려서, 세트에게 왕위를 조카에게 돌려주라고 선고했다고 한다.

 

토트는 오시리스의 재상이었듯이 호루스의 재상이기도 했다. 그리고 호루스가 왕좌에서 물러나자 그 뒤를 이어 토트가 살아 있는 사람들의 왕좌에 올라 3226년 동안 훌륭하게 나라를 다스렸다. 지혜를 지니고 태어난 토트는 학문과 예술을 발명했다. 산술, 측량술, 시하학, 천문학, 점술, 주술, 의술, 외과술, 현악기나 관악기등을 이용한 음악, 그리고 무엇보다도 중요한 업적으론는 문자의 발명을 들 수 있다.

 

상형문자의 발명자로서 '신의 말의 구세주'라 불리는 토트는 또 최초의 주술자로서 셈수(Semsou), 즉 선인(先人)으로도 불린다. 그의 제자들은 선인이 그 마법의 책을 감추어두었던 지하 예배당에 자유로이 출입할 수 있는 것을 자랑으로 여겼으며, 그 책을 통해 '자연의 모든 힘을 누르고 신들까지 다스릴 수 있는 방법'을 배우고자 애썼다. 이렇게 신자들이 바치는 무한한 강대성으로 토트, 즉 그것조다 세 배 이상이나 크다는 명칭이 그에게 주어졌다. 그리스인들은 이집트의 신 토트를 자국의 신 헤르메스와 동일한 신으로 보았는데 이것을 헤르메스 트리스메지스트라고 풀이했다. 이는 토트의 명칭중 "세배 대단한 그리고 또 대단한"에서 유래한 것으로 보인다. 그래서 헤르메스는 토트의 영향을 받아 프톨레마이우스왕조의 알렉산드리아 도서관이래로 도서관의 수호신으로 취급되었다.

 

오랫동안 지상을 통치한 후 하늘 나라에 오른 토트는 거기에서 여러 가지 직책을 맡았다. 우선 그는 달의 신이자 달의 호위를 맡는 신이었다. 왜냐하면 달은 '아'의 이름을 같는 독자적 존재로 되어 있기 때문이며, 어떤 전설에 의하면 토트가 내기로 달의 72번째 빛을 땄다고 전해지기 때문이기도 하다. 토트는 그 빛으로 에파고메노스 ('첨가되었다'라는 그리스어. 이집트인의 360일에 5일의 윤날을 첨가함을 뜻함)의 5일을 만들었던 것이다.

 

또 다른 전설에서는, 달은 호루스의 왼쪽눈에 해당하며 그 밤을 지키는 자는 원숭이 또는 따오기라고도 전해진다. 그 대신 사자의 서의 어떤 구절에는 다음과 같이 적혀 있다. 즉 태양신 라는 그가 '지하 세계의 축복받은 자들을 비추는' 동안 토트에게 자기 대신 하늘을 지배하라고 명령했다. 그래서 태양이 가라 앉으면 즉시 달이 나타나 그 매를 타고 밤의 항해를 시작하는 것이다. 달은 매달 괴물들의 공격을 받고 조금씩 뜯어먹히지만, 그들은 달의 충실한 병사들에 의해서 곧 그것을 토해내게 된다.

 

토트는 달의 신으로서 시간을 재는 신이기도 하다. 그는 달을 나누어 최초의 달에 자기 자신의 이름을 붙여 주고, 또 해를 나누어서 각각 일년을 세계절로 나누었다.

또한 신의 훌륭한 계산자인 토트는 모든 계산이나 시록을 해냈다. 따라서 에드푸의 신전에 있는 3인조(오시리스, 이시스, 호루스)에게 장부를 바치는 토트의 모습이 묘사되어 있는 것이다. 그 장부에는 국가의 규모, 오아시스의 수와 더불어 그 나라의 지리적 구분에 관한 모든 사항이 기록되어 있다.

 

한편 바하리에는 푼트에서 바다 건너 이집트의 신들에게 보낸 보물의 목록이 상세하게 작성하는 토트의 모습이 그려져 있다. 그는 신들의 기록 보관자로서 역사의 보호자이기도 했으며, 여왕들과 하늘의 부인 사이에서 태어날 미래 국왕의 이름을 헬리오폴리스의 성스러운 나뭇잎에 적어놓는 등 왕위 계승에 대한 기록을 게을리하지 않았다.

 

또한 토트는 신들이 왕에게 허락한 축복받은 통치기간을 관란수(棺欄樹)의 새싹에 새겨놓기도 했다. 토트는 신들의 사자로서 기록하는 일도 맡았다. 이집트의 유적을 보면 '라는 말했다. 토트는 그것을 기록했다.'는 문구를 종종 몰 수 있으며, 오시리스 앞에서 행해지는 심판에서 영혼의 계량을 조사하는 토트는, 죄가 없다고 인정되는 자에게는 무죄 판결을 내리고 그것을 비석에 기록했다고 한다.

 

신들의 신임이 두터워 조정자로 선택된 토트는 앞에서 본 바와 같이 호루스의 주장을 인정하여 세트에게 유죄를 선고했다. 따라서 적어도 신왕국 시대 이후가 되면, 토트는 세력을 잃은 세트 대신 대관식과 제식(祭式)을 행했던 것이다. '스마 타우이'의 의식 등이 그것이다.

 

몇몇 문서에는 토트의 아내로서 진실과 정의의 여신 마트가 등장하곤 했으나 어떤 신전에도 두 신이 함께 묘사되어 있지는 않다. 대신 두 아내 세스헤트와 네마우트가 보인다. 그들은 '사악을 제거하는 자'라고 불리며 토트와의 사이에서 한쪽은 호르누웁 한쪽은 네페르 호르를 낳았다.

 

고대 그리스의 철학가 플루타르코스가 전하는 바에 의하면, 따오기의 머리를 가진 그 신의 주된 제전은 토트의 달(이집트의 달력으로 1월) 19일, 새해초의 만월(滿月)에서 며칠이 지난 후에 행해졌다. 그 날 사람들은 '감미로움이야말로 진실'이라는 말을 주고받으며 서로 벌꿀, 무화과 등 달콤한 것을 선물로 교환했다고 한다

 

기원전 4세기 경에 토트 신을 모시는 최고 사제였던 페토시리스(Petosiris)가 점성술과 그의 무덤으로 유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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