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 :
고대 노르드어로 시구르드(Sigurðr, 승리-보호, 승리-명예).
독일어로 지그프리트(Siegfried, 승리-평화)라고 한다.
그외 시바르드 스나렌스벤(Sivard Snarensven), 시구르스(Sigruþr), 시바르드(Sivard)라는 불리기도 한다.
Sig-는 승리, -urd는 보호, 명예, -fried는 평화를 의미한다.
신분 :
드래곤 슬레이어
볼숭 가문의 영웅
프랑크 족의 왕
모습 :
시구르드의 모습을 묘사한 부분은 찾을 수 없지만 그의 눈빛은 매우 매서웠다고 한다. 그의 아버지 시그문드에게서 물려받았다고 한다. 뱀의 눈빛이라는 이야기도 있다.
가족 :
아버지는 볼숭의 왕 시그문드(Sigmund)
어머니는 에일리미 왕의 딸 효르디스(Hjǫrdís)
형제는 신표틀리(Sinfjǫtli), 헬기(Helgi), 하문드(Hámundr)
아내는 구드룬(Guðrún, Kriemhild)
애인 브륀힐드(Brynhildr, Sigrdrífa)
구드룬과의 사이에서 아들 시그문드(Sigmundr), 딸 스반힐드(Svanhildr)를,
브륀힐드와의 사이에서 딸 아슬라우그(Áslaug)를 두었다.
사는 곳 :
규키 왕의 땅 부르군트
업적 :
1. 명검 그람의 주인이 되다.
2. 악룡 파프니르를 죽이다.
전설 :
1. 탄생
시그문드가 훈딩(Hunding) 왕의 아들 링비(Lingvy)에게 죽은 다음 그의 아내 효르디스(Hjordis)는 덴마크의 왕 히얄프레크(Hjálprek)의 아들 알프(Alf)에게 구해져 그의 구혼을 받는다. 그러나 이때 그녀의 뱃속에는 시그문드의 아이가 자라고 있었다.
시간이 지나고 그녀가 아이를 낳자 아들이 태어났다. 효르디스는 알프 왕과 결혼할 예정이었으므로 아기는 히얄프레크 왕에게 보내져 그의 보호를 받기로 했다. 아기를 처음 본 히얄프레크 왕은 아기의 눈빛이 매섭게 빛나는 것을 보고 비범한 인물이 될 것임을 예감했다고 한다. 시구르드는 그곳에서 모두의 사랑을 받으며 자랐다.
2. 레긴과 만나다.
히얄프레크의 궁정에는 레긴(Regin)이라는 드베르그 대장장이가 있었다. 아이는 대장간에서 놀기를 좋아했다. 대장장이는 솜씨가 뛰어난데다가 왕의 아들을 가르칠만큼 아는것도 많았다. 그래서 히얄프레크 왕은 어린 시구르드가 레긴과 어울리는 것을 보고도 그대로 두었다.
레긴이 보기에 시구르드가 몸놀림이 매우 날렵하고 영리했으며 겁이 없고 대담했기에 자신의 야망을 실현시켜줄 인물로 점찍었다. 그래서 레긴은 어린 시구르드에게 많은 것을 가르쳐주었다.
3. 명마 그라니를 얻다.
시구르드가 어느 정도 성장하자 레긴은 그에게 그의 아버지 시그문드가 남긴 황금을 네것으로 해야하지 않겠냐고 부추긴다. 시구르드는 알프 왕과 그 가족들이 황금을 관리하고 있으며 자기가 달라고 하면 언제든지 준다고 대답한다.
그러자 레긴은 왜 궁정에서 그런 낮은 위치에 만족하고 있냐고 묻는다. 시구르드는 자신은 왕에게 평등하게 대우받고 있으며 자기가 원하는 것은 모두 가질 수 있다고 대답한다.
그러자 레긴은 시구르드에게 왜 왕의 마구간지기 노릇을 하면서 정작 자기 말은 없냐고 묻는다. 이에 시구르드가 히얄프레크 왕에게 자신에게 말을 한마리 달라고 하자 왕이 마구간에서 원하는 놈을 골라 가지라고 했다. 시구르드가 왕의 마구간이 있는 숲으로 이동 중 숲에서 수염을 길게 기른 나그네(오딘)를 만났다. 나그네는 시구르드의 말 고르기에 동참했다.
두사람은 말을 시험했다. 말을 타고 깊은 강물로 들어가니 모든 말들이 중간에 돌아 나오는데, 오직 젊은 잿빛 수말 한마리만 전혀 겁을 내지 않았다. 시구르드가 그 말을 고르자 늙은 나그네가 그 말은 슬레이프니르(Sleipnir)의 후손이라고 알려주곤 사라졌다.
시구르드는 이 말에게 그라니(Grani, 잿빛)라는 이름을 지어주었다.
4. 레긴의 이야기
얼마 후 레긴은 시구르드에게 한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레긴의 아버지 흐레이드마르(Hreiðmarr)에게는 세 아들이 있었는데 파프니르(Fafnir), 레긴, 오트르(Ótr)이다. 막내 오트르는 거의 매일 수달의 모습으로 변신하고 폭포수 아래로 흐르는 강물에 들어가 물고기를 잡으며 놀기를 좋아했다. 어느날 오딘, 로키, 회니르가 지나가다 로키가 수달을 발견하여 돌을 던져 맞혔고 수달은 그대로 죽었다. 로키는 수달을 잡았다고 좋아했다.
저녁이 되어 여행자들은 흐레이드마르의 집에 들러 하룻밤을 청했다. 집주인은 반갑게 그들을 반겨주었고 저녁을 대접했다. 그 자리에서 수달을 자랑했는데 흐레이드마르는 자신의 아들임을 알아차리고는 부하들을 불러 세 신을 붙잡았다.
그의 아들인지 모르고 벌인 짓이라는 로키의 항변에 세 신들을 직접 처벌하지 못한 흐레이드마르는 보상으로 그 가죽을 안팎으로 완전히 감쌀 수 있을 만큼의 보물을 요구했다. 오딘은 로키를 보내 배상금을 구해오도록 시켰다.
로키는 안드바리(Andvari)라는 드베르그로부터 보물을 강탈해 와 흐레이드마르에게 주었다. 그중 유독 아름다운 마법의 반지 하나가 있어 오딘이 슬그머니 챙겼다. 흐레이드마르가 로키가 가져온 보물로 수달의 가죽 안을 채우고 밖을 감쌌다. 그러나 수염 하나가 삐져 나왔다. 로키는 오딘이 조금전 챙긴 반지를 받아 그 수염을 가렸다. 흐레이드마르는 세 신을 풀어주었고 로키는 떠나기 전에 그 반지(안드바라나우트)에 죽음의 저주가 있으니 조심하라고 일렀다. 그러나 흐레이드마르, 파프니르, 레긴 세 부자는 보물에 눈이 멀어 로키의 경고를 제대로 듣지 않았다.
세 신이 떠나고 파프니르와 레긴은 자신들에게도 보물을 나누어 줄것을 요구했지만 흐레이드마르는 모든 보물을 보물창고에 넣어 잠궈버렸다. 며칠이 지나 계속된 요구를 무시당하자 파프니르가 아버지를 죽이고 보물을 독차지하고 말았다. 레긴은 자신에게도 보물을 나누어 줄것을 요구했지만 이번에는 파프니르가 보물을 독차지하고 레긴을 위협했다. 완력으로 형을 이길 수 없는 레긴은 할 수 없이 그대로 도망쳤다. 파프니르는 보물을 가지고 멀리 그니타 황야로 가서 동굴 속에 보물을 숨켜두고는 타른헬름을 쓰고 용으로 변신했다. 그리고 잠도 자지 않은 채 보물을 지켰다.
형을 피해 도망친 레긴은 히얄프레크 왕의 대장장이가 되어 기회를 노리게 되었다.
5. 그람(Gramr, 분노)을 얻다.
시구르드는 파프니르를 죽여 흐레이드마르의 복수를 해주겠다고 레긴에게 약속한다. 레긴은 그에게 훌륭한 검을 주겠다고 약속하고 솜씨를 발휘하여 시구르드에게 검을 한자루 만들어 주었다. 시구르드가 그 검으로 모루를 내려치자 검이 부러졌고 레긴은 다시 갖은 노력을 다해 검 한자루를 더 만들었다. 그러나 시구르드가 다시 그 검으로 모루를 내려치자 또다시 부러졌다.
시구르드는 실망하여 그의 어머니를 찾았다. 그의 어머니 효르디스는 그가 성인이 되었음을 깨닫고 그에게 조각난 그람을 주었다. 시구르드의 아버지 시그문드는 링비와의 전투에서 승리를 눈앞에 두고 검이 깨지는 바람에 큰 상처를 입었다. 그 전투에서 오딘이 병사로 변장해 시그문드의 검을 깨버린 것이다. 시그문드는 죽기전에 찾아온 효르디스에게 검 조각을 주며 아직 태어나지 않은 아들에게 전하라고 유언을 남긴 것이다.
시구르드는 레긴에게 이 칼 조각을 가져다주었고 레긴은 온갖 정성을 다하여 이 칼을 복원했다. 시구르드가 이 칼로 모루를 내려치자 모루가 두조각이 되었다. 흐르는 강물에 칼을 꽂고 양털뭉치를 흘려보내자 칼에 닿자마자 둘로 잘라졌다. 놀랍도록 예리하고 튼튼한 명검이었다.
6. 아버지의 복수를 하다.
레긴은 시구르드가 성년이 되자 파프니르를 죽이러 가자고 제촉했다. 그러나 시구르드는 아버지의 복수를 먼저 해야한다고 말했다.
시구르드가 히얄프레크 왕에게 청하자 왕은 그에게 배와 병사를 내주었다. 시구르드와 레긴은 배에 올라 훈딩의 나라를 향해 출정했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폭풍이 몰아쳐서 침몰할 위기였다. 그때 강가 암벽에 서있던 한 사내가 누구냐고 물어왔다. 레긴이 시구르드 일행이라고 답하고는 누구냐고 물었다. 자신을 흐니카르(Hnikarr)라고 소개하고는 배에 올라탔다. 그러자 폭풍이 잠잠해졌다. 흐니카르는 오딘이었다.
배는 무사히 훈딩의 아들들의 나라에 도착했다. 훈딩의 아들들이 강력한 군대를 이끌고 시구르드의 군대와 치열하게 싸웠다. 흐니카르는 시구르드에게 '군사들을 똑바로 세우지말고 둥글게 포진하여 포위하며, 지는 해를 등지고 싸우라'고 조언했다. 과연 그의 말대로 링비의 군대는 포위당하고 눈이 부셔 제대로 싸우지 못했다.
며칠간 팽팽한 접전끝에 시구르드의 군대가 승리를 거두고 링비와 그의 형제들은 모조리 죽었다. 이렇게 아버지와 외할아버지의 복수를 갚았다.
(헬기도 훈딩을 죽이고 복수를 한다. 그러나 정작 시그문드가 죽은 것은 링비와의 전쟁에서였다. 헬기는 훈딩과 그의 아들 네명을 죽여 그 가문에 복수를 했지만 링비를 죽인 것은 시구르드이다.)
고 에다에는 시구르드가 링비의 등에 칼로 독수리를 새겨넣어 죽였다고 한다. 레긴은 그런 시구르드의 사나움을 칭찬했다.
7. 마룡 파프니르를 죽이다.
원수를 갚은 시구르드의 군대는 본국으로 돌아왔다. 며칠 뒤 레긴은 다시 시구르드에게 파프니르(Fáfnir)를 죽이고 보물을 차지하자고 졸라댔다. 약속대로 두사람은 말을 타고 그니타 황야(Gnitaheiði)로 향했다. 동굴 앞에 이르자 용이 물을 마시러 다니는 길이 보였다. 파프니르는 날개가 없어 바닥을 기어다니는 거대한 용(린드부름)이었다.
레긴은 땅에 구덩이를 파고 그곳에 몸을 숨겼다가 용이 지나가면 찌르라고 충고한다. 시구르드는 충고대로 용이 지나갈 길에 구덩이를 파고 몸을 숨겼다. 얼마 후 용이 물을 마시기 위해 구덩이 위를 지나갈때 검을 힘껏 찔렀다. 파프니르는 큰 상처를 입었고 피를 쏟아냈다. 구덩이 속에 있던 시구르드는 그 피를 흠뻑 뒤집어썼는데 이후 잎사귀가 붙어있는 그의 한쪽 어깨를 제외하고 상처를 입지 않는 몸이 되었다.
구덩이 속에서 나온 시구르드와 파프니르의 눈이 마주쳤다. 파프니르는 죽기 전에 시구르드에게 이름 등을 묻는다. 대화에서 레긴이 사주했다는 사실을 알게된 파프니르는 보물을 가진 자는 모두 파멸할 것이라고 얘기한다. 시구르드는 어차피 모든 인간은 언젠가 죽는다고 답하며 그에게 달려들었다.
시구르드는 파프니르와 치열하게 싸워 죽이는데 성공한다.
싸움이 일어나는 동안 멀리 숨어있던 레긴이 싸움이 끝나자 다가왔다. 파프니르의 죽음을 확인한 레긴은 시구르드에게 자신의 형을 죽였다고 비난했다. 레긴은 용의 사체에서 심장을 꺼내고 그 피를 마셨다. 그리고 시구르드에게 심장을 구워오라고 시켰다. 레긴은 용의 피를 마셔서 그런지 약에 취한 것처럼 그대로 잠이 들었다.
시구르드는 불을 피워 심장을 구웠다. 한참을 굽다 이만하면 익었는지 확인하다 손가락을 데여 입에 넣었다. 손가락에 묻은 용의 피가 입에 들어가자 갑자기 새의 말을 알아듣게 되었다. 새들의 대화에서 레긴이 자신을 죽이고 보물을 독차지할 생각이라는 사실을 알게된 시구르드는 레긴의 목을 베고 심장을 먹어치우고 보물을 챙겨 떠났다.
시구르드는 다시 새들로부터 근처 산에 최고의 미인이 잠들어 있으며 그녀를 깨우려면 불의 장벽을 돌파한 후 갑옷을 벗겨야 한다는 이야기를 듣는다. 또 다른 새는 이대로는 시구르드가 규키(Gjúki) 왕의 딸 구드룬과 결혼할 것이라고 예언한다.
8. 잠자는 숲속의 미녀
시구르드는 힌다르피얄(Hindarfjal) 산에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발키리가 잠들어있다는 새의 얘기를 듣고 찾아간다. 산에 가까이 가보니 불의 울타리가 높이 타오르고 있었다. 시구르드가 그라니를 타고 뛰어 넘자 안에 갑옷을 입은 채 잠들어 있는 한 사람을 발견했다.
그의 투구를 벗기니 금발의 미녀였다. 투구는 벗겼지만 갑옷은 벗길 수 없어 명검 그람으로 갑옷을 잘라 벗겼다. 여자가 잠에서 깨어나 무엇이 갑옷을 자르고 날 깨운 자는 누군지 물었다. 시구르드는 자신을 소개하고 명검 그람으로 갑옷을 잘랐다고 답했다. 그녀는 발키리 시그드리파(Sigrdrífa, 승리를 가져오는 여인, 본명은 브륀힐드)였다. 그녀는 정신을 차리자 뿔잔에 꿀술을 담아 긴 잠에서 깨어나게 해준 그에게 대접했다. 그녀는 다시 깨어나 세상을 보게 된 것에 기뻐하며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옛날에 두 왕이 서로 전쟁을 하고 있었다. 그중 나이가 많은 햘름군나르(Hjalmgunnar) 왕은 세상에서 가장 강한 전사였고 오딘신도 그의 승리를 약속해주었다. 젊은 왕은 아그나르(Agnarr)였는데 브륀힐드가 전투에 개입하여 아그나르에게 승리를 주었다. 오딘 신의 결정을 어긴 발키리에게 오딘은 발키리의 권한을 빼앗고 깊은 잠에 빠지게 했다. 그러면서 오딘 신은 브륀힐드가 다시는 발키리가 될 수 없으며 어떤 사내와 결혼할 것이라고 선언했다. 브륀힐드는 잠에 빠지기 직전 두려움에 떠는 사내와는 결혼하지 않겠다고 재빨리 맹세했다. 그렇게 그녀는 잠이 들었다.
시구르드는 발키리였던 그녀에게 지혜를 청했다. 그녀는 세상의 많은 것들, 승리는 법, 사람을 대하는 법에 대해 11가지의 지혜를 주었다. 지혜를 전하는 사이 시구르드와 브륀힐드는 서로 사랑하는 사이가 되었다. 또한 룬 마법을 알려주는데 그중에는 저주가 걸린 음료로 부터 보호해주는 맥주의 룬(ale rune 혹은 beer rune)이 있었다.
시구르드가 브륀힐드에게 청혼을 했다. 브륀힐드는 시구르드가 다른 여인과 결혼할 운명이라고 말하며 청혼을 거절하려 했으나 시구르드는 누구도 자신이 다른 마음을 품게 말들 순 없을 거라며 그녀를 안심시키고 약속의 증표로 안드바리의 반지를 주고 돌아와 결혼할 것을 약속한다.
(시구르드와 브륀힐드 사이에 아슬라우그라는 딸이 있는데 잉태한 시기가 이 때인것으로 본다.)
9. 기억을 잃고 구드룬과 결혼하다.
시구르드는 브륀힐드와 결혼을 약속했지만 그전에 명성을 더 얻기 위해 모험을 떠났다.
시구르드는 브륀힐드의 자매 벡크힐드(Bekkhild)와 결혼한 헤이마르(Heimar) 왕의 궁정을 방문했다가 그 뒤 부르군트의 왕 규키(Gjúki)의 궁정을 찾아간다. 규키는 아내 그림힐드(Grímhildr)와의 사이에 아들 셋과 외동딸을 두었는데, 아들 3형제는 군나르(Gunnarr), 호그니(Hǫgni), 구토름(Guttorm)이었고 딸의 이름은 구드룬(Guðrún)이었다.
그림힐드 왕비는 마법에 통달했으며 마음속에 어두운 면을 감추고 있는 여인이었다.
훌륭한 외모와 강한 전사이면서 보물을 가진 그인지라 규키 왕의 환대를 받으며 한동안 그곳에 머물렀다. 그림힐드 왕비는 이 젊은이가 마음에 들어 자신의 아름다운 딸 구드룬과 맺어지길 바랬다. 그러나 시구르드는 관심을 보이지 않았고 왕비는 그에게 분명 다른 여인이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그림힐드는 망각의 약을 만들어 술에 타 시구르드에게 주었다. 시구르드는 의심없이 마셨다가 브륀힐드에 대한 기억을 잃었다. (앞서 맥주의 룬을 배웠는데 써먹질 못했다.) 그리고 자신의 딸 구드룬 공주를 시켜 시구르드의 술시중을 들게 했고, 자신을 찾아온 구드룬을 보고 사랑에 빠진 시구르드는 그녀와 결혼한다. 그는 떠날 생각은 않고 군나르, 회그니 형제와 서로 충성의 맹세를 한다. 시구르드는 브륀힐드에 대해서는 까맣게 잊고 구드룬과 서로 사랑했다.
시구르드는 구드룬과 결혼하여 결혼 선물로 구드룬에게 자기가 먹고 남겨둔 파프니르의 심장 일부를 선물하는데, 이를 섭취한 구드룬은 현명해졌으나 부작용으로 성격이 이전에 비해 냉혹해졌다고 한다.
시구르드는 부르군트에서 2년 반을 머무르며 규키 왕의 아들인 군나르, 호그니와 셋이 함께 많은 적들을 토벌했고, 구드룬과의 사이에서 자기 아버지의 이름을 딴 아들인 시그문드와 딸 스반힐드를 낳았다.
10. 운명의 장난
규키 왕이 죽고 군나르가 왕위를 이어받았다. 군나르는 훈족의 왕 부들리(Budli)의 딸 브륀힐드를 아내로 삼고 싶었다. 부들리 왕은 이미 죽었고 지금은 브륀힐드의 오빠 아틀리가 왕이 되어있었다. 군나르는 구혼을 하러 아틀리 왕을 찾아가기로 했다. 이 여행에 시구르드도 동행했다. 아틀리 왕은 브륀힐드와 결혼하고 싶다면 그녀에게 가서 직접 물어보라고 했다.
고향에 돌아온 브륀힐드는 아버지나 오빠의 궁전에 살지 않고 힌다르피얄 산에서의 그것처럼 자신의 탑 주변에 불의 장벽을 만들어서 이 불을 넘어오는 남자와 결혼하겠다고 선언했다. 그녀는 오직 시구르드만이 이 불을 넘어 올수 있을 거라 생각한 것이다. 그러나 시구르드는 기억하지 못했다.
불 앞에 선 시구르드와 군나르. 군나르는 불의 장벽을 넘으려 시도했으나 어떤 말도 그 불을 두려워하여 넘을 수 없었다. 시구르드의 명마 그라니는 뛰어넘을 수 있지만 그 말은 시구르드 이외에 누구도 등에 태우지 않았다.
두사람은 꾀를 내어 시구르드가 군나르의 모습으로 변신하고 대신 구혼하기로 했다. 시구르드는 구드룬을 사랑했기에 군나르의 아내가 될 브륀힐드를 털끝 하나 건드리지 않기로 맹세했다.
그림힐드가 알려준 마법으로 군나르의 모습으로 변신한 시구르드가 불의 울타리를 뛰어넘자 브륀힐드는 시구르드가 찾아온 줄 알고 반갑게 맞이했으나 그는 다른 모습이었다. 브륀힐드가 누구냐고 물었고 시구르드는 군나르라고 자신을 소개했다. 이후 3일간 탑에서 그녀와 밤을 보냈지만 두사람 사이에 칼을 두고 그녀를 건드리지 않았다. 브륀힐드가 시구르드에게 이유를 묻자 이러지 않으면 죽는다는 예언을 들었다고 변명했다.
마지막 밤 시구르드는 혼약의 맹세로 반지를 선물했고 브륀힐드는 가지고 있던 반지가 없어 예전에 시구르드에게 약혼반지로 받아 끼던 안드바리의 반지를 줄 수밖에 없었다. (이 반지는 이후에 부르군트로 돌아온 뒤 아내 구드룬에게 선물한다.) 시구르드는 맹세한대로 그녀에게 손끝하나 건드리지 않고 돌아왔다. 시구르드는 재빠르게 본모습으로 돌아왔고 ‘진짜’ 군나르가 브륀힐드와 성대한 결혼식을 올렸다.
(그녀는 시구르드를 사랑하고 기다렸으나 불의 장벽을 넘은 남자와 결혼하겠다는 맹세를 했고 비록 시구르드보다 못할지라도 군나르는 충분히 용감하고 훌륭한 전사이자 왕이었기에 앞서 잠들기 전에 오딘 앞에서 했던 맹세도 지켜지는 셈이라 거절할 수 없었다.)
브륀힐드는 군나르와 결혼을 하고 그의 나라로 오기전에 시구르드와의 사이에서 낳은 딸 아슬라우그를 흘륌탈의 헤이미르에게 부탁했다.
11. 영웅의 최후
브륀힐드는 시구르드와 부부의 인연을 맺었으나 시구르드가 기억을 잃은 탓에 기구하게도 군나르의 아내가 되었다. 하지만 브륀힐드마저 기억을 잃은 것은 아니었다. 분명하게 기억하는 애인 시구르드는 시누이 구드룬의 남편이 되어 있었고 브륀힐드를 기억조차 못하고 있었다.
사이가 좋은 시구르드와 구드룬 사이에서 아들 시그문드와 딸 슈반힐드가 태어났다. 브륀힐드는 겉으로 드러나지 않았으나 마음 속으로 질투와 원망이 불타올랐다.
어느날 브륀힐드와 구드룬이 함께 라인 강으로 머리를 감으러 갔다. 브륀힐드와 구드룬은 서로 상석에서 머리를 감기를 주장했고 서로의 남편이 누가 더 용감하고 대단한지 논했다. 브륀힐드가 자신의 남편이 왕이며 불의 장벽을 넘었고, 시구르드는 신하이니 군나르가 더 대단하다고 했다. 구드룬은 이에 격분하여 해선 안될 말을 하고 말았다. 바로 시구르드가 불의 장벽을 넘은 사람이라고 하면서 증거로 손가락의 반지를 보여주었다. 그 반지는 안드바리의 반지로 예전 시구르드와 사랑에 빠졌을 때 그가 자신에게 준 반지였다. 다시 군나르가 청혼을 위해 불의 울타리를 넘어왔을 때 약속의 증표로 서로 반지를 교환했는데, 그럼 남편 군나르의 손에 있어야 할 반지가 왜 구드룬의 손에 있단 말인가? 옛날 그토록 사랑했던 시구르드가 단순히 자기를 잊은 정도가 아니라 처남인 군나르를 돕기 위해 자신을 속였단 말인가?
자신이 기만당했다는 사실을 알게 된 브륀힐드는 복수를 계획한다. 그녀는 입을 꾹 다물고 복수의 기회를 엿보았다. 남편 군나르에게 시구르드가 자신을 겁탈했다고 말했다. 군나르는 회그니와 상의하여 시구르드를 죽일 의사를 보였다. 회그니는 시구르드를 죽이는데 반대 의사를 보였으나 군나르에게 충성을 맹세한 몸이었다. 둘은 시구르드를 죽이기로 결정했다.
그러나 두 사람은 시구르드와 서로 충성을 맹세한 사이라 시구르드를 자신들의 손으로 죽일 수 없었다. (북유럽 신화에서는 살인자, 간통자, 맹세를 어긴 자 등은 나스트론드라는 지옥에 떨어져서 고통에 시달리게 된다.) 그래서 둘은 맹세를 하지 않은 막내 구토름에게 시구르드를 죽이는 일을 맡기기로 했다. 후환을 제거하기 위해 그의 아들 시그문드도 함께 죽이기로 했다. 안드바리의 반지의 저주가 발동했다.
구토름은 형들의 명령을 받고 시구르드가 잠든 틈에 시구르드 부부의 침실에 숨어 들어가 시구르드의 가슴에 칼을 찔렀다. 시구르드도 죽어가면서 마주 칼을 휘둘러 구토를을 반으로 갈랐다. 소란에 놀라 잠에서 깨어난 구드룬은 침대 위에 남편 시구르드가, 바닥에 구토름이 죽어있는 모습을 보았다. 게다가 아들마저 지난 밤에 죽어있었다. 하룻밤 사이에 사랑하는 사람을 3명이나 잃은 그녀는 충격에 실신했다.
시구르드가 죽었다는 소식을 들은 브륀힐드는 칼로 제 몸을 찔렀다. 죽어가는 블륜힐드를 발견한 군나르가 그녀가 원하는대로 해주었건만 이게 무슨 일이냐고 물었다. 브륀힐드는 자신의 사랑은 시구르드 뿐이라고 답하고는 자신을 시구르드와 함께 화장해 달라고 유언을 남기고 죽었다.
군나르와 회그니는 거대한 장작더미 위에 시구르드와 브륀힐드를 같이 올려놓고 한꺼번에 불태웠다. 남편과 아들을 한꺼번에 잃어버린 구드룬이 정신을 차릴 겨를도 없이 시구르드의 보물은 군나르와 회그니가 차지했다.
소지품 :
1. 그람(Gramr, 분노) : 시구르드가 악룡 파프니르를 죽일 때 사용한 검. 대장장이 볼룬드가 만들었으며 오딘이 바른스톡크 나무에 쑤셔박아 놓은 것을 시그문드가 뽑아 자신의 소유로 했다. 나중에 시그문드가 전쟁에서 검은 망토를 걸치고 챙넓은 모자로 얼굴을 가린 적병의 창을 쳤을 때 그람은 산산이 부서졌다(그 병사는 변장한 오딘이었다). 시그문드는 죽어가면서 아내 효르디스에게 칼조각들을 모아 아직 태어나지 않은 아들(시구르드)가 나중에 다시 칼로 만들어 쓸 수 있게 하라고 유언을 남겼다. 이후 레긴이 검을 다시 만들어내 시구르드의 소유가 되었다. 다시 만들어진 그람을 잡고 시구르드가 모루를 후려치자 모루가 두 동강이 나 버렸다.
외형은 바이킹 소드의 전형과 유사한 것으로 추정된다. 뱀이 똬리를 튼 듯한 무늬가 있다고 한다.(니벨룽의 반지에서 이 검을 만들 때 철을 꼬아서 만드는 장면이 나온다.)
2. 발뭉(Balmung, 상처) : 본래는 니벨룽족의 보물 중 하나로, 지그프리트가 니벨룽족을 몰살시키고 손에 넣은 니벨룽족의 재보들 중 하나다. 주로 "황금 손잡이에 파란 보석이 박혀있으며 칼집은 금색 끈목으로 말아올린 대검"이라고 묘사된다.
지그프리트는 발뭉을 자신의 애검으로 삼아 많은 무훈을 세운다. 지그프리트가 하겐에게 등을 찔려 죽은 뒤 발뭉은 하겐의 것이 된다
3. 노퉁(Nothung, 필요, 필수품) : 니벨룽의 반지에 나오는 보검. 영웅 지그프리트의 검이다. 그람과 거의 흡사하다.
4. 리딜(Riðill) : 드베르그 레긴이 소유했던 검이다. 시구르드(또는 레긴)가 파프니르의 심장을 꺼낼 때 사용했다. 레긴을 죽이고 시구르드가 차지했다.
5. 투명망토 : 오페라 니벨룽의 노래에서 시구르드가 가진 것으로 나온다. 이것으로 군나르가 브륀힐드와 결혼하는 것을 돕고 첫날밤도 도왔다. (발키리 브륀힐드가 혼인은 했지만 첫날밤을 계속 거부했다. 그녀의 완력이 강하여 군나르는 어쩌지 못하다 투명망토를 쓴 시구르드가 도와주어 간신히 첫날밤을 치뤘다고.)
6. 명마 그라니(Grani) : 슬레이프니르의 후손이며 잿빛의 수말이다. 매우 용감하며 주인인 시구르드 외에는 태우지 않았다.
7. 타른헬름(Tarnhelm, 둔갑투구) : 《니벨룽의 반지》에서 타른헬름은 욕심 많은 난쟁이(드워프) 알베리히가 동생인 대장장이 미메(Mime)에게 만들라고 시킨 마법의 투구다. 이 투구는 쓰는 사람의 모습을 투명하게 만드는 힘 외에도 원하는 모습으로 변신할 수 있는 마력이 있었다. 파프니르는 이 투구의 힘으로 드래곤으로 변신했다. 시구르드가 군나르로 변신할 때 사용했다는 이야기도 있다.
8. 마검 흐로티(Hrotti) : 악룡 파프니르의 보물 중 하나. 파프니르는 부친을 살해하고 이 보검을 손에 넣었는데, 후에 파프니르를 쓰러뜨린 시구르드가 이 다른 보물들과 함께 흐로티를 차지했다.
9. 애기스헬름(Œgishiálmr , 공포의 투구) : 악룡 파프니르의 보물 중 하나. 해신 에기르의 투구로 상대를 공포에 빠트리는 마력이 있다. 원래는 파프니르의 아버지가 소유하고 있던 투구로, 파프니르가 부친을 살해하고 이 투구와 보검 흐로티를 착용하는 바람에 레긴은 달아날 수밖에 없었다. 후에 파프니르를 쓰러뜨린 시구르드가 파프니르의 보물산 속에서 이 에기르의 투구, 마검 흐로티, 그리고 황금 갑옷을 발견하고 챙긴다.
기타:
1. 시구르드와 브륀힐드가 죽은 뒤 이어지는 서사시가 브륀힐드의 저승(헬)가는 길이다. 그렇다. 그들은 발할라로 가지 못하고 헬에 떨어진 것이다. 발할라의 존재 의미가 라그나로크에 대비해 최강의 인간 전사들을 모으는 것인데 정작 최강 중의 최강의 영웅인 시구르드는 헬로 가 버렸다. (그나마 행복한 게 하나 있다면 정말로 죽어서는 떨어지지 않게 되었다는 것. 말미에 브륀힐드가 자신과 시구르드는 이제 절대로 떨어지지 않을 것이라고 말한 걸 보면 브륀힐드 옆에 시구르드도 있었음이 확실해보인다. 물론 옆에서 듣고 있는 시구르드는 그 슬픈 기억을 곱씹어야 하니 기분은 좋지 않았겠지만.) 아이러니의 극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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