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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타지 이야기/중국

복희(伏羲) - 삼황, 팔괘의 창시자, 동방의 신

by 별빛아재 2020. 5.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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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와와 복희. 출처 : 구글 검색 >

태호 복희씨(太皞伏羲氏) 또는 포희씨(庖犧氏)는 중국 삼황오제 중 하나이다. 대체로 삼황은 복희, 여와, 신농이 꼽히고, 오제는 황제, 전욱, 제곡, 요, 순이 꼽힌다. 전설에서 복희는 인류에게 닥친 대홍수 시절에 표주박 속에 들어가 있던 덕분에 되살아날 수 있었다고 하는데, 다시 살아났다는 의미로 복희라고 했다고 전한다. ‘복희’란 희생(제사에 쓰이는 짐승)을 길러 붙여진 이름이다. 성씨는 풍(風)으로 전해진다.

 

삼황은 대체로 신적인 존재다. 복희와 여와는 인류를 창조한 존재인데, 대홍수로 둘만 남은 상태에서 결혼해 자손을 퍼뜨렸다고도 하고, 여와가 흙으로 자신과 닮은 인간을 빚었다고도 한다. 처음에 신경써서 빚은 사람은 귀족, 나중에 귀찮아져서 진흙을 대충 뿌려 만든 존재가 천민이 되었다고 한다. 복희는 인간에게 수렵과 목축, 불을 다루는 법을 가르쳤다. 여와는 인간들끼리 혼인해 자손을 번식하도록 해 창조와 생명의 신으로 불린다.

 

그는 사람의 머리에 뱀의 몸을 하고 있다고 하며, 다른 전설에는 용의 몸 이라고도 한다.

 

여와의 오빠라는 설, 남편이라는 설, 둘 다라는 설, 둘이 관계 없다는 설 등이 있다. 둘 다라는 설이 나오는 이유는 이런 그림이 있기 때문이다.

<복희여와도. 출처 : 구글 검색 >

  복희씨의 탄생 신화를 보면 다음과 같다.

  「 중국의 서북방 수만리 되는 곳에 화서씨(華胥氏)의 나라라는 극락세계가 있다. 바로 이 극락에 화서씨라는 여자가 살고 있었는데, 한번은 그녀가 동쪽에 있는 「뇌택(雷澤)」이라는 호수에 놀러간 적이 있었다. 그곳은 나무가 울창하고 풍경도 더 없이 수려한 곳이었다. 그 곳에서 그녀는 호수가에 찍혀있는 어떤 거인(巨人)의 발자국을 우연히 보게 되었다. 워낙 신기하고 재미가 있어서 자기의 발로 그 거인의 발자국을 밟아 보았다. 그때 어떤 야릇한 기운을 느끼고 나서 그녀는 후에 「복희」라는 아들을 낳게 되었다. 」<한대의 위서>

 

  위에 나오는 호수가에 찍혀 있던 거인의 발자국은 아마 호수를 주관하고 있는 신 곧 「뇌신(雷神)」일 것이다. 그는 사람의 머리에다 용의 몸을 한 이를 테면 반인반수의 천신이라고 할 수 있다. 「열자」에 의하면 복희씨의 형상이 「인면사신」 또는 「인면용신(人面龍身)」이라고 기록된 것으로 보아 복희씨는 화서씨와 뇌신의 아들이라 추측할 수 있으며, 스스로 충분한 신력(神力)을 지니고 있었다.

 

뇌신(복희의 아버지와 다른 뇌신?)이 인간계를 홍수로 멸망시키려 했을때 복희씨의 아버지에게 붙잡혔는데, 자신을 풀어준 복희씨와 여와를 그가 살려줌으로써 둘만 살아남았다. 후에 중국 동북부에 진나라를 세워 다스렸다고 한다. 전설에는 150년 이상 왕위에 재위하였다.

 

여와를 배필로 맞이할 당시 이야기로, 복희가 여와에게 구혼을 하였는데 여와는 친남매라는 이유로 계속 혼례를 미루었다. 그리고 더 이상 미룰 수 없게 된 어느 날, 여와가 자신을 잡으면 혼례를 치러 주겠다고 하였다. 그래서 복희가 여와를 잡으러 달리는데, 여와는 나무 둘레를 계속 돌았고 복희는 그 뒤를 쫓아 잡을 수가 없었다. 그래서 꾀를 내어 뒤로 빙글 돌아 여와를 품에 안아 그 뒤로 그 둘은 부부가 되었다고 한다.

 

다른 전승에 따르면 인류가 남지 않은 상황에서 다시 인류를 번창시키기 위해서는 남매끼리 성교를 하여야 하는데 유교적 가치관으로 주저하게 되자, 산의 두 봉우리에서 각각 피운 연기가 하나로 합쳐지면 신의 뜻으로 알자 하여 행하였더니 과연 연기가 하나로 합쳐져서 망설임 없이 두 신이 결혼하여 인류를 낳았다고 한다. 다만 유교가 훨씬 이후에 생겼다는 것을 감안할 때 후대에 덧붙여진 이야기일 가능성이 높다.

복희씨와 여와가 결부되는 것은 한나라 이후의 기록들인데, 이 때문에 기록마다 복희씨와 여와의 관계가 다양한 편이다. 일부에서는 단순히 남매라는 설, 부부라는 설이 존재하며, 진나라 이전의 기록에는 태호화 복희씨가 돌인 인물이 아니었기 때문에 아무런 관계가 없다.

 

< 복희씨. 출처 : 구글 검색 >

복희씨는 글자를 만들었고, 결승(結繩) 즉 새끼를 만들어 약속을 정하는 방법을 가르켰고, 어망을 만들어 고기를 잡을 수 있는 기술과 새 그물로 새를 잡는 법도 가르쳐 주었다. 이처럼 그의 발명은 인류의 생활을 개선하는데 지대한 공헌을 했다고 하겠다. 또한 혼인법(婚姻法)을 정하여 여피 즉 한 쌍의 가죽으로 납채(納采)하는 것을 예로 삼았다.

그리고 복희씨는 얼룩이 있는 소, 양, 돼지를 희생(犧牲)으로 길러서, 포주(庖廚)에서 요리하여 상제와 천지신명 그리고 조상에게 제사지냈다. 천제를 워낙 잘 드려서 그를 포희씨(泡犧氏-동물의 고기를 굽는다)라고도 불렀다. 이와 같은 사실로 볼 때, 이 당시 이미 불을 사용했음을 알 수가 있다.<제왕세기>

복희는 8괘를 만들고 35줄로 된 '슬'이란 악기를 만들었다.

 

그와 동시에, 여와와 더불어 창조신에 해당되는 존재라고 한다. 그리고, 전설에 의하면 태호 복희씨는 기원전 2800년경에 살았다고 한다.(BC 2852~BC 2737) 당나라 시대 간행된 역경에 따르면 복희가 팔괘(八卦)를 만들었다고 서술하고 있으나, 복희가 살았다는 기원전 28세기의 문자나 기호가 발견되지 않았다. 최근 연구 결과에 의하면 팔괘는 주나라 초기 점술가들이 제안하였고 기원전 5세기 무렵에 여러 신앙과 풍습이 더해져 만들어진 것이라고 하여, 사서의 내용들과는 실제로는 다른 면도 있다. 글자를 만들었다고 믿어지기도 하지만, 역시 복희가 살았던 시대의 문자는 발견되지 않았다.

전설에 의하면 100년 이상 살았다고 전해진다. 무덤은 화이양 현 북쪽 3리 떨어진 곳에 있다. 하지만 다른 전설 시대에 나오는 인물 무덤처럼 실제인지는 명확하지 않다.

< 복희팔괘도. 출처 : 구글 검색 >

삼황오제 중 3황의 맨 앞에 위치하는 존재로 처음으로 팔괘를 그었다고 한다. 이 때문에 우리가 흔히 아는 팔괘를 복희팔괘라고도 한다. 팔괘를 창안하여 음양을 통해 인간과 자연의 이치를 짐작하게 한 신이라고 한다. 그와 동시에, 동쪽과 봄을 다스리는 신이며, 인간들에게 불을 선사했다고도 한다. 그와 동시에, 여와와 더불어 천지를 창조해내었다고 한다.

 

태호 복희씨의 인류에 미친 가장 큰 업적은 처음으로 역(易)의 8괘(희역)를 만든 것이다. 지금부터 약 6천년전 황하(黃河)라는 강가에 용마(龍馬)가 나타났는데, 신기한 용마의 등위에 그림이 있었다. 개벽초 그 시대에 복희씨가 그것을 연구해서 우주의 진리를 찾은 것이다.

 

  「옛날 포희씨(泡犧氏)가 천하에 임금 노릇을 할 때에 우러러서는 하늘에서 상(象)을 관찰하였고, 굽어서는 땅에서 법칙을 관찰하였으며, 새, 짐승들의 무늬와 땅의 마땅함을 관찰하였고, 가까이는 몸에서 취하고, 멀리는 물건에서 취하였다. 여기서 비로서 팔괘(八卦)를 지어 신명(神明)의덕에 통하고, 만물의 정상(情狀)을 유별하였다.」<역, 계사전 하>

 

  이 글에 의하면 복희는 위로는 천문(天文)을, 아래로는 지리(地理)를 관찰하고, 멀리는 동식물의 모든 생명을 보고, 가까이는 인체의 경락을 이해해서 세상의 만물에 공통된 모습이 존재한다는 것을 처음으로 발견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즉, 천 지 뢰 풍 수 화 산 택(天 地 雷 風 水 火 山 澤) 등 8괘의 상을 자연현상에서 발견한 것이다.


또한 그가 홍수로써 이루어진 세상의 재탄생과도 관련이 깊어, 곤의 의지를 받들어 치수 작업을 이어나가는 우(禹)와도 만남이 있다고도 전해진다. 우가 치수 작업을 하고 있는데 어느 동굴에 들어가게 되었다. 그리고 그곳에서 뱀과 사람의 형상을 띠고 있는 신을 만났으니 그가 바로 복희씨였다.

그를 보좌하는 신은 나무의 신 구망(句芒)으로, 서방 천제인 소호씨의 아들 중 한 명인 중(重)이다. 그는 봄을 주관하는 신이며 과연 성격 또한 약동하는 봄의 성질을 지니고 있다. 그와 관련된 이야기 중 하나로는 강태공의 수명을 늘려주었다는 것이 있다.

 

  복희씨와 그의 여동생 여와씨 이후에 공공씨(共工氏), 태정씨(太庭氏), 백황씨(柏皇氏), 중앙씨(中央氏), 역륙씨(歷陸氏), 여련씨(驪連氏), 혁서씨(赫胥氏), 존로씨(尊盧氏), 혼돈씨(混沌氏), 호영씨(昊英氏), 주양씨(朱襄氏), 갈천씨(葛天氏), 음강씨(陰康氏), 무회씨(無懷氏)가 차례로 대를 이어, 목덕의 왕 풍성은 15대를 계승하였다. <18사략>

 

원래 민간 전설상으로는 태호와 복희는 별개의 인물이었다. 전국시대 진(秦)나라에서 편찬한 세본(世本)에서 동일 인물로 서술하자, 이후 황조 이후부터 동일인으로 서술 하기 시작하였다. 이름이 두 개이고, 본래 동일인이 아니라는 기록이 존재하므로 실존성은 낮은 신화적인 상징이라고 해석이 하기도 한다.

 

태호 복희는 여와처럼 고대 민간 신앙의 신화일 뿐 실존 인물이 아니라는 비판적인 시각도 있다. 복희 상상도가 출토된 신장의 경우 본래 한족 지역이 아니며, 한족 이외에 남방 소수 민족들도 복희 신화를 가지고 있어, 고대 씨족 사회에 널리 사용된 민간 신으로 이해하는 경우도 있다.

 

전한시대 지배층 무덤인 마왕퇴의 명정(銘旌)에 그려진 그림에도 복희씨가 나오는데 하늘 맨 위 가운데에 자리잡고 좌우에 하느님의 말을 전하는 새라는 란(鸞)이 있으며 오른쪽에 해가 있지만 아홉 개 밖에 없고 복희씨를 포함해야 열이 된다. 이 그림의 화가는 복희씨를 해의 신이자 하느님으로 여긴 듯 하다.

 

중국 역대제왕묘에는 삼황오제 중 첫 번째로 모셔져 있다.

태호 복희씨는 성이 풍(風)이며 목덕(木德)으로 왕이 되었다. 태(太)는 「매우」, 호(昊)는 「밝다」는 뜻으로 복희씨는 덕이 높은 천자로서 매우 밝아 해와 달과 같다는 뜻이다. 3황 5제 중 최초의 왕이며, 목덕인 나무(木)는 역(易)의 괘(卦)로 나무 또는 바람이므로 성을 풍(風)이라고 했다. 현 중국의 하남성 진주(陳洲)에 도읍했고 재위 기간은 115년이었다.

 

여와와 복희가 결부되는 것은 중국 한나라 때부터라고 한다.
복희씨와 관련된 창세 신화, 그가 봄을 주관하는 동방의 천제라는 것 등 여러가지 이야기들을 조합해보면 그는 생명의 시작을 뜻한다고 할 수도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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