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토르(Hathor)는 하늘·사랑·기쁨·결혼·춤·아름다움 등 다양한 기능을 담당하는 여신으로 표현되는데, 보통 사랑과 미의 여신으로 숭배받는다. 오시리스와 이시스의 아들인 호루스의 부인이다. 태양신 라의 네 딸 중 한명이며, 하토르가 태양신 라의 벌을 행할 때에는 파괴의 여신 세크메트로 변한다고도 알려져 있다.
처음에는 풍년을 기원하는 여신으로 시작하여 미와 사랑, 결혼까지 관장을 했고 그녀가 세크메트로 변하면 전쟁과 복수의 여신으로 변한다.
하토르는 나일강 근처에서 가장 중요한 여신들 중 한명이었고 고대 이집트 종교의 가장 잘 알려진 상징물 중 하나로 남아있다. 하토르는 모든 파라오의 어머니 여신이자 사랑과 쾌락의 여신이었다. 하토르에 대한 숭배는 왕족에서 평민에 이르기까지 대중적이었다. 하토르는 출산 여성들의 수호신이었으며 춤과 음악과 풍요 그리고 광부의 여신이기도 했다.
본래 ‘호루스의 집’으로 해석해 태양과 동일시되는 호루스가 밤에 머무는 천공(天空)이었을 것으로 여겨지고 있다. 이는 호루스가 매일 저녁이면 찾아와 그녀의 가슴 속에 몸을 파묻고 쉬다가 아침이 되면 다시 태어나는 공간이라는 뜻이다. 하토르는 '호루스의 저택'이라고 하는 '하트-호루스(Hot-Horus)'에서 유래되었고 이는 하늘의 여신으로서의 역할을 상기시킨다. ‘집’이라는 것도 거대한 암소로 묘사되곤 하는 하늘을 말하는 것이다. 하토르는 때때로 파라오들의 어머니로 여겨지며, 파라오들은 스스로를 ‘하토르의 아들’이라 칭했다. 테베에서는 태양신 라가 서쪽 지평선 밑으로 가라앉는 것과 관련해 ‘서역의 여인’이라는 이름 아래 사자(死者)의 여신으로 여겨졌다.
권능의 뿔을 지닌 위대한 어머니 여신이다. 사랑과 풍요를 관장하며, 따라서 여타 신화의 대지모신의 성격 또한 가지고 있다. 이시스와 동일시 됐으며, 고양이 형상의 여신 바스트와도 동일시 되었다.
보통 2개의 뿔 사이에 태양원반을 달고 있는 여신, 또는 암소의 모습으로 표현된다. 보통은 암소 머리를 한 여성의 모습으로 묘사되며, 이러한 모습을 한 하토르일 때는 다산, 풍요, 행복 등을 상징하는 좋은 신이다. 죽은 자들(특히 파라오)을 저승으로 인도한다. 종종 파라오들의 어린 시절을 묘사하는 벽화에 하토르의 젖을 먹고 자랐다고 표현되는 신이다. 하토르는 종종 파피루스 갈대나 뱀, 혹은 시스트룸이라고 알려진 딸랑이 악기로 그려진다. 하토르상(像)은 이집트 건축에서 기둥머리를 장식하는 데에도 사용되었다.
그러나 사자머리를 한 세크메트의 형상으로 변하면 세상에서 가장 잔인한 분노의 여신이 된다.
라가 늙어 힘이 약해지자 인간들은 점점 라를 경배하기를 게을리 했다. 인간들의 죄에 분노한 라가 하토르에게 자신의 권능이 담긴 눈을 주며 인간들을 벌하라 하자 지상으로 내려오며 날개달린 사자의 모습을 취해 유례없는 학살을 펼친다. 이에 인간들은 두려워하여 라에게 빌기도 하고, 살육의 신이 된 하토르에게 세크메트의 이름을 바치기도 하며 그 분노를 달래려 했다.
보다못한 오시리스가 라에게 세크메트를 말려줄 것을 부탁했다. 그 청을 받아들인 라가 나서서 인간의 학살을 그만둘 것을 명했지만 세크메트는"인간을 죽이면 당신(라)의 기운이 담긴 그들의 피가 나의 심장에 환희를 돌려줍니다"라고 하며 학살을 그치질 않았다.
결국에는 인간을 구하기 위해 술과 석류, 그리고 꼭두풀을 이용하여 붉은 미약을 만들어 지상에 7천병을 뿌렸고 그것을 인간의 피로 착각한 세크메트는 그 약을 몽땅 마시고는 취해 잠들었다.
라는 잠든 세크메트에게서 증오심을 빼냈고 세크메트는 하토르가 되었다.(바스테트 신화와 중복된다.)
이후에도 세크메트를 달래기 위해 매년 일정한 날이면 라의 명에 따라 신전의 사제들이 세크메트에게 바칠 미약을 만들어 바쳤다고 한다.
하토르는 이집트 제4왕조까지는 애매모호하게 묘사되었다. 역사 시대에 하토르는 암소 신의 이미지로 표현되었다. 이집트 선왕조 시대의 유물로 하토로와 비슷한 상징을 가진 암소 신들이 있는데 이집트학 학자들은 이 암소 신이 하토르와 동일하거나 전신前身일 것이라고 추측한다.
이집트 선왕조 시대에 만들어진 나르메르의 팔레트(Narmer Palette)의 윗 부분에 암소 신이 나타난다. 이것은 하토르이거나 아니면 다른 여신인 바트(Bat)로 추측되는데, 때로는 두 여신은 서로 다른 기원을 가진 것으로 보여지지만, 동일한 여신이거나 동일한 신성의 반영이라고 여겨진다.
바트(Bat)는 고대 이집트 고왕국 시대에 숭배되었던 은하수의 여신이다. 사람의 얼굴에 소의 귀와 뿔을 가진 소의 모습으로 묘사되었다. 이집트 사람들은 바트의 젖이 은하수가 되었다고 믿었다. 중왕국에 들어서는 사랑과 미의 여신 하토르와 동일시되었다.
하토르에게 바친 신전은 이집트 전역에 걸쳐 있었다. 이 하토르 숭배의 첫 중심지는 상(上)이집트의 단다라(Dandarah) 및 아프로디트폴리스였다. 오늘날 가장 유명한 것이 룩소르에서 북쪽으로 약 60km 떨어진 단다라이다. 때로 명계(冥界)의 여왕으로 생각되기도 하였는데, 묘지가 많은 테베로 옮겨지면서는 지하묘지의 수호신이 되었다. 하토르의 첫번째 신전은 이집트 왕조시대 전부터 그곳에 존재했다고 한다. 단다라에 있는 하토르 신전은 쿠푸 파라오(Khufu, 재위기간 : BC 2589 ~ BC 2566) 통치 기간동안 재건되었다. 이 신전은 필라의 여인 하토르와 함께 시스트럼 연주자였던 하토르의 아들 이히(Ihy)에게 바쳐졌다.
이히는 손에 악기를 들고 있는 벌것벗은 아이로 묘사되었다. 이 덴드라 신전은 여러 차례 재건 되었고 마침내 프톨레마이오스 시대에 큰 건물이 되었다. 불행히도 신전을 짓기로 결심한 파라오가 그의 이름을 남기지 않았기 때문에 정확한 신전 창시자는 알 수 없다. 신전은 미완성이며 기둥을 나란히 세워 천장을 받치는 형식인 하이포스타일 홀로 건물의 주요 부분 앞에는 주탑이나 열린 공간이 따로 없다. 신전에서 마지막으로 세워진 부분은 티베리우스(Tiberius, 로마제국 2대황제, 재위기간 : 14 ~ 37) 황제 때로 추정되는데, 프톨레마이오스 왕조 최후의 여왕이었던 클레오파트라 7세(Cleopatra VII, 재위기간 : BC 51 ~ BC 30)의 몰락 이후에도 이집트에서 하토르 숭배가 계속되었음을 시사한다.
하토르 신전 또는 하트호르 신전은 하토르를 경배하는 신전이다. 유적의 입구에서부터 나란히 자리잡고 있는 탄생전, 콥트 교회 터, 네크타네보의 탄생전, 하트호르 신전, 이시스 신전을 통틀어 하트호르 신전이라고 부른다. 먼저 보이는 탄생전은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탄생전이다. 안뜰을 사이에 두고 세워진 것이 하트호르 신전인데, 암소머리의 여신 하트호르에게 바친 것으로 구조는 그 시대에 세워진 신전의 전형적인 것으로 2개의 열주실에 전실과 지성소가 잇달아 있는데, 지성소를 둘러싸고 예배당, 태양신 ‘라’의 옥좌, 불의 방, 물의 방, 공물의 방 등 11개의 작은 방이 딸려 있다. 예배당에는 하트호르 여신상이 있고, 고대에는 신년의식이 여기에서 행해진 것으로 추측된다. 신전의 남쪽 벽에는 클레오파트라와 카이사르의 아들인 프톨레마이오스 16세의 부조가 뚜렷이 보이고, 그 밖에 전체도, 상형문자 해독의 단서가 된 카르투시 등이 있는 것으로 유명하다.
하토르는 서부의 여왕, 터키석의 여왕, 이국 땅의 여왕으로도 불렸다. 하토르에 대한 가장 오래된 자료는 이집트 제4왕조(BC 2613 ~ BC 2494)로 거슬러 올라간다. 하지만 하토르 관련 문화가 더 오래 전부터 있었을 것이라는 몇몇 자료도 존재한다. 이집트 신 왕조(BC 1550 ~ BC 1069) 파라오들이 하토르를 숭배한 것으로 알려졌다. 여왕 하트셉수트(Hatshepsut, 재위기간 : BC 1503 ~ BC 1482)는 데이르 엘 바리에 있는 장제전(국왕의 영원한 생명에 대해서 기도와 관존의 예의로 공양의식을 올리던 곳)에 하토르 신전을 추가했다.
하트셉수트는 강력한 여왕권을 위해 하토르와 함께 전쟁의 여신 세크메트 숭배를 더욱 강화했다. 하지만 하토르 숭배는 이집트 남성 통치자들에게도 중요한 의식이었다. 가령 람세스 2세(Ramesses II, 재위기간 : BC 1279 ~ BC 1213)는 아부 심벨에 하토르와 자신의 아내인 네페르타리(Nefertari)를 두개의 신전을 짓기도 했다. 하토르 숭배는 또 프톨레마이오스 왕조(BC 332 ~ BC 30) 기간 동안에도 대중적으로 유행했다.
하토르는 암소의 머리와 귀를 가진 여인 또는 암소 그 자체로 묘사되었다. 나르메르 팔레트(Narmer Palette, 상이집트 히에라콘폴리스에서 발견된 의식용 팔레트)에 있는 왕의 벨트에 새겨진 암소는 심중팔구 하토르 여신으로 추정된다. 이 공예품은 이집트 왕조 시대 이전의 것으로 하토르에 관한 기록 중 가장 빠른 것으로 추정된다. 하토르는 왕의 에이프런이 그녀로부터 왔다는 기록이 있는 피라미드 문서에도 등장한다.
하토르의 가장 중요한 조각상 중 일부는 아멘호테프 2세(Amenhotep II, 재위기간 : BC 1427 ~ BC 1400)시절 만들어 졌다. 아멘호테프 2세는 자신을 하토르 앞에 서서 그녀에게 보호를 요청하는 어른으로 묘사했다. 비록 하토르가 암소의 머리를 가진 여자로 묘사되었지만 더많은 경우 소의 뿔이 달린 머리장식을 하고 그 사이에 태양원반을 이고 있는 아름답고 날씬한 여성으로 묘사되었다.
아부심벨 대신전이 있는 곳이 원래는 하토르 여신의 영역이었다.
하토르 숭배의 또 다른 중심지는 필레 신전으로 주로 이시스(Isis)의 성역이었으나 하토르 신전도 함께 존재했다. 필레 신전은 두 여신의 묘사에 많은 영향을 주어 이집트 역사 후반기가 되면서 하토르와 이시스를 하나로 간주하는 경향이 생기게 되었다. 이 신전을 통해 하토르가 음악과 춤의 여신으로도 알려지게 되었다.
신왕조 시대 하토르는 왕의 계곡에서 일했던 장인들이 점령한 디르 엘 메디나에서 매우 인기있는 모티브였다. 고고학자들은 그 마을에서 하토르에게 바쳐진 여러 장의 목조품들을 발굴했다. 발굴된 목조품들의 대부분은 세티 1세와 람세스 2세 때의 것이지만 가깝게는 프톨레마이오스 시대에 만들어지기도 했다. 장인들은 하토르를 기리기 위해 기석을 세웠다. 중왕조(BC 2055 ~ BC 1650) 시절 하토르는 레바논의 비블로스(Byblos, 바이블의 어원이 된 도시)에서도 숭배되었다. 발굴된 자료들을 보면 하토르가 비블로스에서도 대중적인 숭배의 대상이었고 그녀를 '비블로스 부인'이라는 별칭으로 불렀다고 한다. 하토르 숭배의 유적들은 수단 북동부의 누비아에서도 발견되었다.
하토르는 기원전 11세기 가나안에서도 숭배되었다.
요즘도 하토르는 고대 이집트의 가장 인기있는 여신 중 한명으로 이시스와 세크메트, 바스테트 옆에는 항상 하토르가 미의 상징으로 등장한다. 한편 이집트 시나이(Sinai)를 방문한 많은 관광객들이 터키옥과 함께 보석을 구입하는데 고대 이집트 시절 시나이는 터키옥의 가장 중요한 원천이었다. 광부들은 하토르가 자신들을 보호한다고믿었고 터키옥을 비롯한 많은 보석들을 하토르 신전에 바치곤 했다.
이집트 사랑의 여신 하토르는 그리스-로마 문화권에서 많은 인기를 누리기도 했는데 그리스 신화속 사랑의여신 아프로디테의 많은 요소들이 하토르를 모방한 것으로 알려졌다. 한편 하토르는 수메르의 사랑의 여신 닌후르삭(Ninhursag)을 상당 부분 모방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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